실천의 사상가 曺植을 말한다

입력 2001-02-26 14:00:00

올해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탄생 500주년. 남명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대학자이자 민본주의의 뿌리를 다진 실학의 비조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있어 아직 그는 생소한 인물.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난 퇴계 이황과 비교해 볼 때 일반의 인식은 천양지차다. 이는 평소 실천을 중시한 그가 저술을 거의 남기지 않았는데다 관직에도 오르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정인홍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던 북인파가 인조반정 이후 정치적으로 몰락, 학맥이 끊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런 그가 요즘들어 재조명되고 있다. 연구성과도 현재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경상대 허권수 교수가 '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을 하는가: 실천의 사상가 남명 조식과의 만남'(한길사.값 1만1천원)을 내놨다. 남명의 생애와 사상, 학문을 포괄적으로 정리 서술한 남명에 관한 첫 평전이자 남명학 연구 성과를 쉽게 풀어 일반과 만나는 첫 작업인 셈.

저자는 당시 역사적 배경과 풍속, 제도를 비롯해 점차 잊혀져 가는 우리 전통문화까지 구수한 옛 맛을 살려 특유의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그대로가 16세기 유림사회의 복원도라 할만하다.

남명이 살다간 16세기는 세 차례의 사화, 외척과 권신들의 횡포,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가기 직전의 그야말로 절망으로 치닫던 시기. 그는 나날이 기울어가는 조정의 정치력과 날로 이반되는 민심, 그리고 과거에 합격하여 적당히 벼슬자리나 얻어서 연명하려는 안일한 유림사회의 동향을 직시하며 이땅에서 선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문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강한 실존적 물음을 제기한 학자였다.

그는 중종과 명종, 선조대에 걸쳐 모두 12번 벼슬을 제수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산림처사로 남아 72세를 일기로 지리산에서 영면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생전에 이루려던 뜻을 접지 않고 덕계 오건과 한강 정구, 동강 김우옹, 수우당 최영경, 망우당 곽재우 등 정치와 학술,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 책에서 남명의 생애와 사상, 학문을 연대순으로 풀어 정리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모도 다채롭다. 살아 생전 몇차례 편지는 주고 받았으나 한번도 함께 자리한 적이 없는 퇴계 이황과의 서로에 대한 평가, 조선시대 명기로 손꼽히는 황진이가 지리산 유람을 왔다가 남명을 찾는 대목도 눈에 띈다. 이외에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 윤원형과 정난정, 문정왕후와 승려 보우, 김효원과 심의겸, 정철과 정인홍, 임꺽정 등 16세기를 풍미한 인물들이 그려진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