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정의와 의리

입력 1999-06-08 14:35:00

루스 베네딕트여사의 저서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정서를 일본 사람보다 더욱 잘 표현한 역작(力作)으로 지금까지 꼽히고 있다. 미국인으로 일본을 이해한 그녀의 통찰력은 인상 깊다.

이처럼 일본문화에 일가견을 가진 그녀가 동양과 서양문화를 비교하면서 "영어에는 정의(Justice)라는 말은 있어도 의리(義理)라는 말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서양 사회는 '정의'라는 잣대를 중심으로 움직여 나가는 반면 일본 등 동양권은 사적인 친분과 이익을 겨냥, 의리 중심으로 엮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의리 중심의 사회는 인간적이지만 자칫하면 공공의 복리나 국법질서를 앞세우기보다 사정(私情)에 치우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폭력조직이나 범죄집단에 정의는 존재할 수 없어도 자기네들 끼리의 의리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영어에 의리란 단어는 없다"는 한마디 말로 인간관계 중심의 일본사회가 빚어내는 문제점을 잘 지적한 베네딕트의 통찰력이 놀랍다고나 할까.

요즘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이 연일 일본서 현정권을 비난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위 민주계로 지목되는 의원들이 YS와 행보를 같이 하더니 급기야 이원종(李源宗) 전대통령정무수석까지 정치 재개를 선언했다.

그는 "어른이 독재에 맞서 민주화의 길에 나섰으니 지옥이든 불섶이든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원종씨가 개인적으로 YS를 모시든 말든 그것은 자유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뒤끝에 환란까지 불러들인 집권팀의 일원으로서 지금 할소리 안할소리 모두 내뱉을 때인지 분별력을 가졌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아마 이씨는 사회정의의 시각보다 YS와의 의리에 더욱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경우에 따라서는 침묵하는 것이 더욱 돋보일 때도 있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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