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세풍-'언어 혼란의 시대'

입력 1998-11-05 14:52:00

바벨탑의 혼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의 이야기. 하늘에 이르는 바벨탑을 세워 신에 도전하려던 인간의 무모한 계획은 그러나 언어를 혼란시켜 사람들을 멀리 흩어지게하는 신의 심판으로 중단된다.이는 바로 우리 인간에 있어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의심판으로 내려졌던 언어의 혼란이 수습되기는 커녕 그뒤로는 인간 스스로 혼란을 일으키는 오만을 부리고 있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대통령은 '성접촉'을 '부적절한 관계'로, 일본은 '패전'을 '종전'으로 '침략'을 '진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시대에 물가를 올리는 현실화조치를 굳이 '안정화'조치라고 표현, 언어를 혼란시켰었다.

말다르고 뜻다르고

대체로 권위주의 문화에 젖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집권세력에 의해 언어의 혼란이야기되고 있다. 즉 집권세력의 언어와 일반국민의 언어가 다른 경우가 그렇다. 그

러잖아도 우리는남북으로 갈라져 '교양있는 서울사람이 두루 쓰는 서울말'과 '혁명적으로 세련되고 문화적으로가꾸어진 평양말'이 통일될때는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데 남한내에서 마저 여권의 언어 다르고 국민의 언어가 다르다면 이는 분명 문제인 것이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고 그저 '말바꾸기'일 뿐이고 정치인이"국민의 이름으로…"할 때의 '국민'은 때로는 그렇게 말하는 '개인'이 되기도 하는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최장집 고려대교수(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의 논문에 대한 논쟁에서도 이런 혼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최교수는 6·25를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고 표현했다.

6·25를 어떻게 보든 그것은 학자로서는학문의 자유에 속한 문제다. 그러나 최교수가 이에 대한 해명에는 언어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즉 "'역사적 결단'은 긍정적 의미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국어사전은 물론 일반국민의 언어인식 어디에서도 역사적이라는 낱말에 이러한 의미를찾아볼수 없다. 일반국민의 언어인식으로는 역사적 결단은 대체로 '위대한 결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결정'도 아니고 '결단'이라는데서 이런 의미는 더욱 뚜렷해 진다. 자살과 자결의 품격이 다르듯 결정보다 결단의 품격이 한단계 높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교수의 언어와 일반국민의언어 사이에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사정은 법대로 했는데 어찌해서 여당의원은 살고 야당의원은 죽는지 모르겠다.

야당의원은 1심에서도 2심에서도 의원직이 상실되는 5백만원을 선고받는데 여당의원은 한두명도 아닌 많은 의원들이 1심에서 의원직 상실의 형량을 선고를 받았다가2심에서는 의원직을 유지할수 있는 형량을 선고 받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편사사정 혹은 괘씸죄 적용은 없다고 했는데 입건된 면면을 보면 이를 수긍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야당혹은 무소속의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은 자발적으로 여당행을 택했는데도 어찌해서 상당수가그들의 뒤에는 선거법위반등 범법사실이 묶여 있는지 모르겠다.

편파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어찌해서 전라도 출신이 장군진급등 각종 인사에서 위세를 떨치고 獵쩝層 이상하다. 공정보도를 하고 있는데도 왜 국감장에서 신낙균 문화관광부장관은 "사실과 다른 보도가 있었다"고 증언했을까.그리고 구조조정등에서 시장원칙을 지켜 민간자율을 존중한다고 해놓고는 자민련의 김용환부총재의 말처럼 '사실상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두 발언은 모두 본인에 의해뒤에 취소되기는 했지만 외압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분명 여당이 쓰는 '법치주의''법대로''공정수사''자발적' '공정인사''공정보도''민간자율'의의미는 분명 일반 국민이 쓰는 의미와는 다른 것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그렇지 않고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에서도 바벨탑의 혼란이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직만이 약

'언어의 혼란으로 흩어졌다'함은 바로 신뢰의 상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프랜시스후쿠야마가 그의 저서 '신뢰'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주장한 이후 신뢰는 이제 한시대의 이슈가 되어 있다. 이는 공자도 이미 2500년전 국가 경영에서 식량(식) 군사(병) 신뢰(신)중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갈파한 바있다. 권위주의도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의 정부에서 언어의 혼란으로 인한 신뢰의 상실이라는 불행이 일어난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정직만이 신뢰회복의지름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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