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없이 대구미래 없다

입력 1998-09-16 14:34:00

IMF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각 지방정부는 정보통신 관련사업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대구지역의 경우 전통적인 섬유와 기계·금속 분야의 회생에만 매달려 첨단산업분야는 기껏해야 창업지원 수준에 그치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첨단산업과 연계되지 않은전통산업의 재기는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실태와 문제점, 육성방안을 짚어본다.▨지역실태

현재 세계경제는 정보통신 관련산업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의경우 이 분야의 산업수준이나 경쟁력 등을 가늠해볼 길이 없다. 대구시를 비롯한 관련기관어디에도 변변한 실태조사나 통계자료 하나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IMF이후 벤처기업 육성이 절대명제로 받아들여지면서 생색내기 수준의 벤처자금지원이 있은 정도다. 대구시 관계자는 테크노파크를 비롯한 지역대학들의 각종 연구시설, 창업보육시설 등을 내세워 "지원시설은 전국 상위수준"이라고 항변했다.

섬유와 기계금속 분야의 지역기업들도 '우물속 개구리 신세'는 마찬가지다. 한번 사업을 시작하면 급작스런 변화나 업종·업태전환은 생각도 않는다. 기술개발은 새로운 것보다는 그저 기존 라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도에 그친다. 지역의 중소기업비중은 전국의 17%선. 그러나 지난해 산업자원부에서 지원한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자금 활용은 1.3%에 불과하다.정보통신 관련산업에 필요한 인프라에 대해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대구가 다른 어느지역에 비해서도 뛰어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대학에서 배출되는 고급인력과 3공단, 구미, 포항 등 배후지의 기술력, 대구와 경북 테크노파크, 전국적으로 깔려있는 지역출신 인맥 등 부족한게 거의 없다는 것.

그러나 정보통신 업계 자체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대표성을 지닌 단체조차 제대로 결성하지 못해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있으니 소프트웨어 진흥지구 지정, 벤처빌딩 건설 등에나서기는 커녕 변변한 전시회나 세미나조차 열린적이 없다.

▨타지역 현황

각 지방정부들은 지역실정에 맞는 첨단 산업단지 유치에 지역경제 활성화의 명운을 걸고 있다. 인천 송도의 '미디어밸리', 춘천시의 '애니매이션 타운', 부천시의 '영상도시화', 전주시의 '첨단영상도시' 등이 그것이다.

오는 2001년 입주를 목표로 인천 송도 신도시의 총 1백6만평 부지에 조성중인 '미디어밸리'에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입주할 '소프트파크', 벤처기업의 연구공간을 제공하는 '벤처빌딩', 연구소와 기술전시관이 자리잡는 '테크노파크' 등이 들어선다.

만화·영상산업에 대한 춘천시의 노력은 취약한 조건 속에서 지방정부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범으로 꼽힌다. 시정 최우선과제를 멀티미디어 산업기반 조성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과 함께 산학연 공동연구와 관련대학 및 고교신설을 추진중이며 올해 두번째 국제만화축제, 첫 소프트웨어 제품발표회 등 행사개최에도 열의를 보이고있다.

국제영화제로 이미 관심을 끈 부천시는 영상산업을 선도산업으로 육성키로 하고 2002년까지12만평 규모의 영상테마파크와 공원지구, 업무지구를 연결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전주시도 멀티미디어 창업지원과 게임대학, 게임파크 등을 담은 영상산업기지 구축 등을 목표로분주한 상황이다.

이밖에 부산, 대전, 광주 등도 전자전시회 개최, 벤처빌딩 건설, 멀티미디어 단지조성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육성방안

각 지방정부의 첨단산업 유치는 아직 출발선상에 있다. 관건은 업체들이 그 지역을 찾아오게 만들고 거기서 창업하고 싶어하도록 하는데 달렸다.

대구 역시 다를 바 없다.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와 해결책 모색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경북대 전자·전기공학부 출신 1만여명이 2백여개 업체를 창업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지역으로 돌아온 경우는 거의 없다. 구미공단 전자업체에서 수시로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서울로 갔다는 얘기 뿐이다.

이들을 대구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파격적인 반대급부가 주어져야 한다. 우선 창업또는 이전에 필요한 공간을 파격적인 염가에 제공해야 하고 이를 위해 통폐합으로 비게 되는 동사무소나 관공서의 유휴공간이 적합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자금확보와 부품 및 정보획득 등을 위해 지방정부와 업계의 공동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규모 단지조성보다는 벤처빌딩이나 소프트웨어진흥구역, 창업지원시설 등을 통한 군소집단화가 훨씬 현실적이다. 업체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형성된 미국의 실리콘밸리, 정보기술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는 뉴욕의 실리콘앨리(Alley) 등의 예에서 보듯 계획적인 단지조성만이 성공의 열쇠는 아니다. 이밖에 지역에 대한 적극적 홍보와 지역산업의기반조성을 위한 각종 전시회나 제품발표회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수많은 세부방안에 앞서 목표로 삼아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휴먼 인프라'의 구축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는 사람, 이자소득이나 투기 따위보다는 성공가능성 있는 사업에 자신의 자금을 투자하려는 사람, 마케팅과 경영을 돕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구성돼야만 지역경제도 자생력과 대외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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