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화 파노라마

입력 1998-08-27 15:42:00

피카소- 거침없는 파괴 로 걸작품 양산 라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멋진 시대), 20세기 미술의 여명은 피카소의 등장과 함께시작됐다.

20세기의 전조를 알리는 1900년, 열아홉살밖에 안된 스페인출신의 화가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가 혈혈단신 파리에 왔다. 1900년 파리 샹 드 마르스 공원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그림한점을 출품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만해도 이 애송이 화가가 20세기를 뒤흔들 위대한 화가가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피카소는 19세기까지 무수한 예술가들에 의해 철옹성처럼 지켜져온 일시점(一視點)의 관점을 다시점(多視點)이라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일거에 허물어버렸다. 바로 큐비즘(입체주의)이다. 그가 창시한 큐비즘은 20세기 미술의 방향을 바꾼 이정표가 됐다. 금세기를 대표하는비평가중의 한사람인 허버트 리드는 20세기의 예술가들중 피카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것 이라고 단언했다. 피카소는 20세기를 통틀어 전세계 예술가들의 스승이 됐다.

이 조숙한 젊은 화가는 1901년부터 백내장을 앓고 있는 뚜쟁이여인 등 생존의 비참함을 주제로 푸르스름하고 우울한 청색조의 그림을 그렸다. 1904년 파리 몽마르뜨르의 가난에 절은아틀리에촌 바또 라브아르. 창문만 열면 술주정꾼, 걸인, 광인들이 비틀거렸다. 가난한 청년화가는 여기서 마치 컴컴한 밤을 관통하듯,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른바 청색시대의 걸작품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매력적인 파리지엔인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사랑에 빠졌다. 그의 그림에서 창백함과침울함이 걷혀졌다. 캔버스는 삶의 활기가 느껴지는 붉은 색조로 채워졌다. 이른바 분홍시대 가 열린 것. 피카소의 생활과 그림은 이렇게 늘 일치했으며, 그때마다 새로운 역작들을탄생시켰다.

화가로서의 순조로운 성공에도 불구, 피카소의 새로운 미술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었다. 사물을 기하학적 눈으로 보는 세잔의 작품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마침내 1907년, 미술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 탄생했다. 유곽의 창녀들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도끼로 잘라낸듯한 여인들의 몸과 제멋대로 붙은 눈·코· 입따위로 사람들을 질겁하게 했다. 피카소의 친구인 화가 조르주 브라크조차 우리에게 솜뭉치를 먹이고 석유를 마시게 해서 불을 뱉어내게 하려는것 같군 하며 비아냥거렸다.화가들은 있을 수 없는 그림 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금세기 미술의 새로운 길을 열어줄 작품 으로 예찬했다.

20세기의 첫 10년에 이미 전대미문의 화가로 등장한 피카소. 이후 역작 게르니카등 억압에대한 저항과 자유· 평등에 대한 열정, 삶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때로는 가슴이 찢기는 고통으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거침없이 표출했다. 그의 천재적이고 자유로운 예술혼은 회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조각· 도자기· 판화· 태피스트리 등에까지 미술 전분야에 걸쳐 활화산처럼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그는 생애 약4만4천여점의엄청난 작품을 남겼다.

천재· 미치광이· 괴물…. 그를 따라다닌 수식어는 끝이 없었다. 위대한 거장은 지난 73년91세때 역사 저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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