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 피서 폭포가 부른다

입력 1998-08-21 14:00:00

대구경북지역에는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크고 작은 폭포가 많다. 그중에서 영주 연화폭포,영양 화매폭포, 안동 용담폭포, 경주 청수폭포는 순수한 자연미를 간직한 곳. 많은 비로 폭포수가 장관을 이룬 요즘 이들 폭포를 찾아 원시비경을 즐겨보자.

연화폭포는 소백산 줄기인 국망봉(해발 1,421m)과 상월봉(해발 1,394m), 1,032봉에 둘러싸인오지마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일명 연화동)에 있다. 1,032봉자락에 모습을 숨긴 연화폭포는 동폭포와 서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연화동 동북쪽 1km 지점에 있는 동폭포는 진입로에잡목이 우거져 접근하기가 어렵다. 서폭포는 연화동 입구에서 남서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20여분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높이 10m에서 다섯차례 층을 이루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폭포 아래에는 깊지 않은 항아리 모양의 웅덩이가 있다.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서폭포는 5분이상 발을 담글수 없을 만큼 물이 차다. 대구~중앙고속도로~안동~5번 국도~영주~옥대에서 단양방면 지방도를 따라 6km쯤 가면 연화동 입구가 나온다. 소요시간은2시간30분정도.

화매폭포는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삼의계곡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맹동산(해발 812m)과 포도산(해발 747m)에서 발원한 물이 10m의 상단폭포를 거쳐 12m 하단폭포로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폭포 아래 소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깊다. 주변에 햇볕을 피할 만한 그늘이 부족한 것이 흠이다. 화매폭포에 가려면 계곡 입구 삼의교에서 다리 아래쪽으로 난 비탈길을따라 10여분 내려가야 한다. 암벽을 타야 할때도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삼의교에서 3km 정도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삼의 제1폭포가 있다. 높지 않고 물살이 세지않아 물맞이를 즐길 수 있다. 대구~중앙고속도로~안동~34번 국도(영덕방면)~진안~토곡에서화매리 이정을 따라 3.6km 가면 삼의교가 나온다.

길안천이 굽이도는 안동시 길안면 금곡리에는 높이 9m의 용담폭포가 있다. 대구에서 영천으로 간 다음 35번 국도를 타고 안동방면으로 1시간 정도 달리면 길안면 고란리에 닿는다.용담사를 알리는 표지판을 따라 좌측 시멘트 포장길을 1km정도 올라가면 용담폭포로 가는샛길이 나온다. 가파른 숲길을 10분정도 내려가면 하트모양의 암굴 속으로 물줄기가 쏟아지는 용담폭포가 신비한 자태를 드러낸다. 굴속이 너무 어두워 폭포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폭포 아래에는 세개의 소가 잇따라있다. 맨 아래 소는 깊지 않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이밖에 경주시 양남면 상계리에도 유명하지는 않지만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청수폭포가있다. 경주시 외동읍과 양남면 경계에 솟은 삼태봉(해발 629m)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10m높이에서 검은 암벽을 타고 낙하하는 모습이 시원함을 더해준다. 폭포 주변에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돌들이 곱게 깔려 있다. 경주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울산으로 가다 모화에서 상계방면으로 난 우측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달리면 상계리에 닿는다. 〈李庚達기자〉

◆폭포 주변 볼거리

연화, 화매, 용담, 청수폭포 주변에는 둘러볼 만한 유적이 많다.

연화폭포 인근에는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있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창건한 고찰. 경내에는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을 비롯, 국보 5점, 보물 3점이 있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37년(1542) 주세붕이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건립 당시 백운동서원으로 명명되었으나 명종 5년(1550)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건의로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고 이름을 바꾸었다. 풍기에서 옥대 방면으로 난 915번 지방도를따라가면 소수서원과 부석사가 나온다.

화매폭포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인 영양군 입암면 연당동에는 남이장군의 전설이 깃든 남이포가 있다. 반변천과 청계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우뚝 솟은 기암절벽 선바위가 남이 장군의기개를 대변해 주고 있다.

용담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인 고란리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안동시 방면으로 4㎞ 달리면 묵계서원이 나온다. 조선 숙종 32년(1706) 김계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사원철폐때 훼손된것을 지난 25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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