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와 교권

입력 1998-03-30 00:00:00

언론이 가장 만만하게 건드리는 상대는 힘없는 교사와 말단 경찰관이라는 고전 적인 얘기가 있다.

솔직히 대다수 교사들은 높은 학력과 직업의 전문성이나 보람에도 불구하고 스 스로 '힘없는 직종'이라는 자탄을 한다. 말단 경찰관들도 그런 정서는 교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심심하면' 신문이나 TV에 두들겨 맞고 한번 신문.방송에 '났다'하면 층 층시하 상부로부터 시시콜콜 질책과 경위를 추달받는 것도 다른 힘있는 직종에 비해 훨씬 더 심하고 고달프다는 푸념들을 한다.

언론쪽에서 보면 교사나 경찰관들의 접촉대상이 학부모, 지역민원인등 일단 수적 으로 다수계층이고 이해관계가 민감한 민생사안이 많은 만큼 진정이나 민원등에 의한 보도확률이 높을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힘없고 만만해서 건드리는건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나 최근 새학기가 시작된뒤 교사들의 촌지문제나 학부모동원등에 대한 고발성보도들이 비밀카메라 촬영방식까지 동원돼가면서 잇따라 들춰지자 교사들사이에서는 '만만하니까 또 건드린다'는 식의 묵은 불만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비리가 전혀 없다는건 아니지만 극소수 일부교사의 치부를 들춰내 전체 교육계 의 교권을 무참히 무너지게 하는것이 과연 교육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냐 는 것이 그들의 물음인 것같다.

마치 가정에서도 아이들앞에 들춰내기보다는 덮어두는게 더 나은 집안허물과 비 밀같은 것이 있고 그것이 더 교육적일수도 있다는 항변같은 것이다.

물론 언론의 알권리가 중요하고 교육계라하더라도 비리는 비리인만큼 사실보도 는 당연한 언론의 고발기능이라는 논리는 옳다.

더구나 다른 공무원들은 10~20%의 봉급삭감을 당하고 기업체에는 정리해고의 고통을 수용하고 있는 마당에도 교사들에게는 수당 2만원만 삭감해주면서 사기 진작을 고려해준 국민적 이해를 망각하고 촌지관행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일부 교사들에게 교권이니 교육철학을 거론할 여지가 있느냐는 반론 또한 옳은 이야 기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만 서로 생각해보자. 교사촌지 보도들이 나간뒤 각학교에는 이런 팻말이 세워졌다.

'우리학교는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오가는 교문이나 교무실입구에 세워진 이 팻말앞을 교사들은 아침 저 녁 낯을 붉힌채 지나다녀야 한다.

대문앞에 '아버지는 도둑질않고 뇌물도 받지 않습니다'는 팻말을 세워놓고 사는 집안을 상상해본다면 대다수 교권을 지키는 교사들의 억장 무너지는 심정을 이 해할수 있다.

교정에 촌지금지 팻말이 서있는 학교에 교권이 제대로 설리 없다.

교권이 안서면 교육이 이뤄질수 없고 그 결과는 모두의 손실로 돌아간다. 팻말선것이 제탓이라고 하면 교사들도 할말은 없지만 촌지시비는 교육계 내부의 자정(自淨)에 맡기는게 옳았다.

의정부 지원 일부판사들도 천만원대의 촌지를 받았어도 내부징계로 끝냈다. 법원 앞에 촌지금지 팻말이 세워졌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또한 중앙의 일부 언론사들이 갑자기 청와대 출입기자를 호남출신 기자들로 바 꿔넣고 편집국장, 정치부장등 요직들은 대거 전라도 출신들로 갈아앉히고 있지만 팻말같은건 없다.

만일 그 언론사 현관앞에 '새 정부에 연줄대고 권언(權言)유착을 위한 인맥대기 인사가 아닙니다'는 비하된 팻말을 써붙이게 한다면 언권(言權)이 제대로 서겠느 냐고 교사들은 되물을 것이다.

언론도 때로는 나의 알권리 못잖게 약한자의 권리와 명예도 적절히 배려해주는 따뜻한 가슴과 철학을 가질 필요가 있다.

촌지문제만은 언론도 사법부도 결코 교육계만큼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리고 그것 은 서로서로가 어디까지나 일부의 단면일뿐이다. 더큰 전체를 위해 서로를 아끼 고 감싸주는 것이 오히려 애국적일때도 있다.

사회곳곳이 파괴되고 있는 이 IMF의 난세에 우리내부에서 서로를 파괴하고 일 부의 치부를 들어 전체를 쓰러뜨리며 불신과 분열의 상처를 덧내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