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증권 부도-금융대란 조짐

입력 1997-12-06 00:00:00

살얼음판 같던 금융시장에 마침내 금융기관 부도라는 구멍이 나고 말았다.

5일 자금난을 겪던 고려증권이 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부도를 내고 종합금융사들이 무더기로부도위기에 몰리는 등 금융대란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고려증권의 부도는 또다시 부실 금융기관의 예금인출 사태와 금융기관간의 자금 지원 중단으로 이어지는 등 정부가 조절할 수 없을 만큼 일파 만파의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이같은 금융공황의 징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밀려 재정경제원이 지난2일 9개 종금사에대해 아무런 사전 대책도 없이 업무정지 명령을 내리면서 나타나기 시작됐다.

물론 지금까지도 2개월이상 은행→종금→기업으로의 자금흐름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은행들이 기업의 연쇄부도 등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종금사들에 돈을 빌려주었지만 자금흐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9개 종금사의 영업정지로 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찾지 못하자 종금사에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했다. 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지 못한 대한, 나라, 한화,삼양, 영남, 한길, 금호, 대구종금 등8개 종금사와 고려증권은 3일 결제가 돌아온 1조6천억원을 막지 못했다. 은행과 우량 종금사들은다음날 오전까지도 자금지원을 거부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금융기관의 부도사태가 예견된 것이다.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해 6천억원의 원화자금을 하루동안 지원하고 은행들이 나머지를 도와주기로 하는 선에서 일단 부도위기는 넘겼지만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다.

결국 고려증권과 8개 종금사는 4일에도 만기가 돌아온 1조8천억원을 결제하지못했다. 은행들이 3일 못막은 자금에 대해서 이틀짜리 만기로 빌려줬는 데도 상환불능자금이 하루만에 2천억원이나늘어난 것이다.

부실 종금사들이 못막는 자금은 그동안 매일 매일 늘어나면서 은행들이 감당할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말았다. 은행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을 할 처지가 못된 것이다. 영업정지 종금사에 잠긴 1조원상당의 콜자금이 풀리고 종금사에 대한 은행권불신이 해소되지 않는한 종금사 부도위기는 매일 밤 똑같이 재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미 해외 및 국내 차입줄이 거의 끊긴 부실 종금사들은 돈을 구할 엄두도 내지못하고 나자빠져버렸다. 고려증권도 계열사인 고려종금이 업무정지를 당하면서 더욱더 자금난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은 은행대로 종금사에 지원한 자금을 정부가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돈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며 자금지원을 거부했다.

시중은행에 말로만 협조를 외쳐온 재경원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강건너 불 보듯 바라보기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금융대란이 뻔히 예견되는 현실에서도 금융기관간의 협조는 이뤄지지 않고정부도 뚜렷한 정책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무정부상태가 지속돼온 것이다.

이같은 정책부재와 금융기관의 부도위기로 자금시장에서 콜거래는 거의 중단되다시피하고 금리는폭등하는 등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5일 콜금리는 4.26%%포인트가 뛰면서 법정상한과 다름 없는 연 24.93%%를 기록했으며 91일만기의 기업어음(CP) 유통수익률 역시 법정한도인 연 26.67%%에서 형성됐다.

금융기관들의 부도나 부도위기가 이어질 경우 금리 폭등은 물론 또다시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져우량금융기관까지 집단 부실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융시스템이 붕괴된 다음 IMF자금이 들어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금융기관들이 서로 신뢰해 자금흐름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정부가 구체적인 안정대책을 빨리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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