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그림이 있다" 그저 무심한 눈길에 문득 스치는 한 점 그림. 그림의 매력은 무엇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편안한 몰입(沒入)에 있다.
모처럼 큰맘먹고 들어선 화랑에서 괜스레 주눅든 심정으로 눈치껏 바라보는 유명작가의 유화보다는 때로 노점상의 싸구려 액자들이 더 시선을 잡아채는 것도 '예기치 못한 만남'이 주는 즐거움때문.
25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1동 대구여성병원.
1층 로비와 2층 계단 벽 곳곳에 걸린 한국화가 이미자씨의 그림 10여점이 진료 대기중인 환자,보호자들의 조바심과 초조함을 씻어주는듯 비내리는 늦가을의 을씨년스러움 대신 병원 내부를 한결 화사하게 밝힌다.
지난해 4월 개원과 동시에 서양화가 백미혜씨의 초대전을 시작으로 문을 연 이 '보통사람'을 위한 전시공간은 현재까지 7번의 전시회를 가지며 '그림이 있는 병원'이란 닉네임을 병원측에 붙여주는 효자역할을 톡톡이 해내고 있다.
대구의 경우 기업 이미지 제고와 대(對)시민 문화사업 차원에서 운영중인 이같은 소규모 전시공간은 여성병원을 포함해 6곳. 모두 무료 전시장이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대관료를 내고 상업화랑에서 작품전을 갖기에 부담을 느끼는 젊은 화가들과'문턱높은' 화랑을 찾지않고도 제대로 된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시민들에 모두 인기를 얻으며 '틈새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9년 10월 은행 본점 1층 로비에 10여평의 공간을 확보, 지역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전시장을 오픈한 대구은행갤러리는 이들 문화공간의 대표주자.
은행 달력에 실을 그림을 그린 대구 작가 24명을 초대한 '향토 서양화 24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백여회의 각종 초대전과 기획전, 대관전시를 꾸준히 연데다 은행 고객과 일부 직원까지 전시작품을 구입할 정도로 사내외에 알려져 젊은 작가들 사이에 꽤 인기있는 갤러리로 틀을 굳혔다.
특히 지난해 11월 파티션(전시용 칸막이)과 조명 시설을 보강한 이후 매주 공백기없이 회화, 사진, 조각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열려 고객과 작가가 함께 찾는 전시공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대동은행갤러리도 지난 7일 창립 8주년을 기념, 본점 1층 로비에 전시공간을 갖췄다. 기업부설 갤러리중 가장 넓은 40여평의 면적에다 관람객 편의를 위해 안내요원 1명을 배치한 점이 돋보인다.대동은행 고객부 조재광 차장(40)은 "매년 창립기념 음악회를 개최해왔으나 단발 행사에 그쳐 좀더 고객과 밀착한 문화활동을 해보자는 뜻에서 공간을 마련했다"며 "홍보를 강화해 중견.신진작가의 개인전, 대학원생 졸업작품전을 중심으로 운영할 계획"이라 밝힌다.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들어서면 관람객을 맞는 카페 '하티스트'와 30여평의 전시장. 중구동성로 제일모직 하티스트 매장의 이벤트홀은 지난해 3월 매장 오픈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판화와 서양화 소품을 위주로 미대를 갓 졸업한 20대 신진들의 그룹전과 첫 개인전을 주로 열고있는 이벤트홀은 제일모직에서 운영한다. 최근 서예와 조각, 꽃꽂이 전시도 선보이는데다 전시가비는 기간 틈틈이 매장 고객을 위해 '추억의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는 아담하고 이색적인 공간이다.
소장 공재수씨(34)는 "올 한해 개최한 전시만 모두 31회"라며 "대구 이벤트홀의 성공으로 본사에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매장에도 올봄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다"고 귀띔한다.
원로 서양화가 정점식씨의 95년작 유화 '대지의 입김'이 로비벽에 걸려있는 반월당 삼성금융플라자도 지난해 6월 1층에 20평의 공간을 마련, 상업성을 배제한, 철저히 '보여주는' 전시를 고집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대관전만 10차례 열어 다소 전시가 뜸한 편이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입지조건 덕분에대관신청이 많이 몰린다. 재학생 전시는 사절.
별도 예산이 책정돼있지 않아 초대.기획전을 열지 않고 문화강좌센터의 부속시설 정도로 인식되고 있어 삼성측의 지원이 요청되고 있다.
대우자동차판매(주)에서 운영하는 대우아트홀(동구 신천동 대우영남타워빌딩 24층)도 시화전과 개인전을 수시로 열고 있으나 내년부터 유료화할 것을 적극 검토중이라 아쉬움을 준다.좋은 입지조건과 무료 대관의 매력이 더해갈수록 선별되는 전시작품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 기업들의 전시공간. 때로는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주고, 가볍지만 의미있는 즐거움을 주는 그림.그림은 보여질수록 아름답다.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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