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절

입력 1997-06-19 14:08:00

지리산. 반란의 터. 깎아지른 기세만큼이나 깊은 한들이 모여들었던 땅. 백제에 쫓긴 마한의 백성들도, 신라에 밀린 가락국의 양왕도 지리산의 품안에 숨어들었다. 이성계의 개국의지를 인정하지않았다 해서 일찍이 '불복산', '반역산'이 돼버린 빨치산들의 고향. 그러나 이제는 전국의 등산객들이 웃으며 오르는 산이 돼있다. 문화의 현장. 역사의 땅. 지리산의 역사는 새로 쓰여지고 있으나 산과 그 호흡을 나눈 천년고찰들만이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전하며 반갑게 사람들을 맞을뿐이다. 실상사, 천은사, 화엄사, 연곡사, 쌍계사. 삼도봉을 경계로 전북·전남·경남을 넘나드는다섯 사찰을 돌며 지리산의 품을 새로 더듬는다. 그 현장을 가보자.

남대구 IC에서 88고속도로로 차를 올려 1백10km가량 달리면 전북 남원시 실상사에 닿는다. 천왕봉과 반야봉 사이, 지리산의 종주맥과 덕유산 줄기에 폭 싸인 신라 천년의 고찰. 도선은 비기에서실상사터를 천하의 명당이라 칭하고 "백두대간의 지맥이 천왕봉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들지 않기위해 실상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장승의 부릅뜬 시선을 등뒤로 느끼며 경내로 들면 지맥을 다스리는 절치곤 보잘것 없는 규모에 놀란다. 조선 세조, 고종 때 잇단 화재로 거의 소실된것을 재차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납작하게 땅에 엎드린 보광전, 약사전, 명부전, 극락전이 한눈에들어온다. 그래도 남아있는 석탑, 석등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 보물일 정도로 문화재만큼은 단일사찰 가운데 최고규모. 보광전 우측으로는 지난해부터 옛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지금까지 절의 훼손에만 급급하다가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느끼며 산문을 나선다.

천은사까지는 다시 30㎞길. 지리산 종단도로를 타고 해발 1천m 시암재를 넘는 난코스지만 좌우로귀가 멍멍하게 펼쳐지는 아찔한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금방이다. 전남 구례군 천은사. 원래 감로사라는 절이었으나 전설에 의하면 감로천에 살던 이무기가 죽자 냇물도 같이 말라버려 천은사(내가숨어버린 절)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리까지 함께 숨어버렸나. 스님들의 참선도량으로 애용돼왔을만큼 경내는 유달리 조용하다. 대숲을 흔들며 바람이 우는 소리. 유난히 두껍게 깔린 자갈위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아무리 조심해도 버적버적 울리는 소리에 이방인은 마음을 졸인다. 극락보전앞에는 유명한 천은사 염주를 맺는 보리수 한그루가 마침 소담스럽게 핀 누런 꽃송이를 주렁주렁매달고 서 있었다. 행여 꽃이 떨어질까,살금살금 천은사를 나선다.

천은사에서 화엄사까지 가는 10km남짓한 길양편에 들어선 카바레, 단란주점들이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화엄사 경내에는 마침 여천 쌍봉초등학교에서 견학나온 초등학생 6백여명으로 아수라장이었다. '1964. 박정희대통령 기념식수'라고 적힌 소나무 앞에서 '김치','돈가스'를 연발하며기념촬영에 열중하는 한 무리를 지나치자 대웅전 왼쪽으로 각황전의 웅장한 자태가 드러났다. 국보 제67호. 우리나라에도 과연 저런 거목이 있었던가. 통층으로 뚫린 각황전 내부를 지탱하고 있는 6개의 기둥은 그 굵기와 높이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뒤에 자리잡은 3여래 4보살상의 규모역시 웅장하다. 각황전 왼편으로 아카시아나무, 참두릅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내주는 계단을 오르면 역시 국보 제35호인 4사자3층석탑이 정상에 서있다. 신기하게도 주변의 소나무들이 석탑안에 서있는 대덕입상을 향해 한결같이 머리를 조아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 묘한 느낌이 들게한다.내려오면서 무심코 세 본 계단의 수는 108개. 천왕문을 나서려는 방문객들의 시선이 자꾸만 등뒤에 머문다.

연곡사까지는 다시 24km가량 차를 달려야한다. 유난히 잎이 크게 달린 우엉밭. 무논을 헤짚는 경운기. 정겨운 시골길인가 싶더니 어느새 오른쪽에 섬진강을 끼고 달리고 있다. 다시 피아골 방향으로. 여름햇살을 받아 뜨악한 냄새를 풍기는 밤나무꽃길을 8km 더 가면 연곡사다. 연곡사는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인데 임진왜란과 6·25에 연이어 소실되고 지금은 둥그런 돌담안에 터만 남아있는 형편. 산문을 오르는 계단마저 흙더미와 바위가 어지럽게 가로막고 있어 마치 폐사가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게한다. 포클레인을 세워두고 옆에서 군인들과 점심공양을 하고있는 스님들이 있길래 물어봤더니 산문에서 대적광전까지 4단으로 층을 쌓는 객토작업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한다. 이렇게 상처를 많이 입은 곳인데 별것 있을까했다가 뜻밖에 국보 53호로 지정된동부도, 54호 북부도와 마주쳤다. 도대체 이 산이 품고 있는 재산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또 소실된 것은….

궁금증을 접어두고 다시 섬진강을 따라 경남 하동길을 재촉한다. 줄을 당겨 강을 건너는 나룻배에 넋을 잃다가 노래 덕에 유명해진 화개장터에 들어섰다. 반가운 마음에 둘러봤다가는 '있어야할 건 다 있다'는 노래말이 무색한 초라한 모습에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15km가량 차를 달리면어느덧 마지막 행선지 쌍계사. 90년에 한 부부의 시주로 세웠다는 거대한 9층석탑이 허옇게 질린얼굴로 입구에서부터 길을 막아서더니 사원 곳곳에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진 석등이며 교각이 삐죽삐죽 솟아올라 이물감을 느끼게 한다. 최치원의 글씨가 새겨진 국보 47호 진공선사 대공탑비는오히려 금이 가고 부서져 초라하기까지 하다. 스스로 공덕을 자랑하는 세속에 등을 돌리고 싶은것일까. 대공탑비는 쌍계사의 방위와 어긋나게 비스듬히 돌아 앉았다. 손님들이 기거할 숙소를 짓느라 따갑게 귓전을 때리는 굴착기를 뒤로하고 돌아나오는 속내도 편치 못하다.길은 여기서 끝났다. 단 하룻만에 둘러본 지리산 5개 대찰의 모습은 모두 달랐다. 그러나 이 산은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쌓았다 허물고 또다시 세우고…. 망가뜨린 것은 무엇이고 지금 세우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 산과 절은 곳곳에 생채기만 남긴 채 무심히 발길을 돌리는 인간들을 꾸짖는다. 길은 여기가 시작이라고.〈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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