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재벌, 너도나도 언론사냥

입력 1997-05-01 14:35:00

러시아에서 재벌들이 앞을 다투어 신문과 방송사를 사들이는 '언론 사냥'에 나서면서, '재벌언론'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같은 재벌의 언론 장악 시도는 최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유력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의 경영권이 석유재벌인 루코일이 손에 넘어가면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

구 소련 정부 기관지였던 이즈베스티야는 지난 92년 민영화되어 주식의 51%%를 직원들이 소유하는 형태로 편집의 자율권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해지면서 불가피하게 증자하는 과정에서 루코일사가 이즈베스티야의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해 결국 41%%의 지분을 소유하게되면서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 버렸다. 7명의 이사진 중 4명을 확보한 루코일측은 "편집권을존중하겠다"는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신문의 논조에 대한 간섭은 물론 이 신문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고르 골렘비옵스키 편집국장의 해임을 겨냥하고 있어 언론계가 경악하고 있다.루코일의 이즈베스티야 장악 기도가 노골화되면서 이 신문의 기자들뿐만 아니라 언론계와 학계등에서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모스크바대 언론학부 야신 자수르스키 학장 등 지식인 대표들은 "언론사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행태는 민주주의도 자유 경제도 아닌 또다른 전체주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루코일은 자신의 '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의사를 밝히고 있어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있다.

러시아 언론이 재벌의 손안에 들어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자금난에 시달리는 언론사를 인수하거나 아예 새로운 매체를 설립하는 등의 방식으로 언론을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금융재벌인 모스트그룹의 경우 3대 방송의 하나인 NTV방송과 위성방송인 NTV+,일간지 시보드냐 시사주간지 이토기 등을 거느리면서 러시아 미디어 산업의 최강지로군림하고 있다. 자동차판매 등을 주력업종으로 하는 압토바스 그룹은 OPT방송과 일간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 시사주간지 아가뇩등을 소유하고 있다.

러시아 재벌들이 유독 언론장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경제개혁이 시작되면서 사유화 등을 통해서 정당하지 못하게 기업을 키운 것에 대한 비판여론을 통제하려는 의도와 함께 정.경 유착이 어느나라보다 심한 러시아의 현실에서 언론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아 기업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벌언론의 폐해는 이미 상당히 현실화되고 있는데 문어발식 기업확장이나 금융과 세제 등의 특혜, 민영화 과정에서의 비리 의혹 등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눈에 띄게 무디어져가고 있다.공산정권 아래서 당과 국가의 통제를 받았던 러시아 언론이 이제는 독점자본의 손길에 시달리고있는 것이다.

〈모스크바.金起顯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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