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태·사회1부장"
요즘은 용(龍)이 너무 흔해 빠졌다. TV연속극의 제목까지도 '龍의 눈물'이다. 지난 주말 용의 눈물에선 참으로 평범한 화두(話頭) 하나가 가슴을 쳤다.
아들 방원(태종)과 정도전의 싸움판에서 중전 강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절간으로 거처를 옮긴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주고받는 말-
"오랜만에 절간에 오니 여태껏 왜 이리 괴로워하며 살았는지…. 참으로 대사가 부럽소. 어찌하면이 고통을 덜 수 있겠소?"
"전하, 이 절에 솥이 하나 있는데 셋이 먹으면 모자라고 천(千)이 먹으면 남습니다.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셋이서 먹어도 다투면 부족하고, 천이 먹어도 서로 사양하면 남는 것이지요…"*'龍門'을 다투는 10龍들
1일자 한 일간지엔 '불타는 10용의 야망'이란 제하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신한국당의 대선주자9용과 DJP의 11용에서 병석의 온산(溫山:최형우 고문)이 빠져 10용인데, 모두들 청와대가 보인다고 등용(登龍)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딱한 모습이다.
용문에 오른다는 이 '등용'의 뜻은 중국 황하 상류 협곡(峽谷)의 급류 '용문'을 한번 뚫고 오른물고기는 용으로 화(출세)한다는 후한서의 전설에서 나온 것.
그러나 이 급류에 다투어 덤벼든 물고기들이 물속 바위에 이마를 부딪혀 실신한 채 하류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낙방거사, 허망한 패배자다. 이마(액·額)에 입은 상처(점·點)라는뜻의 이 '점액'은 곧 등용의 정치적 반어(反語)이다.
12월은 대선(大選)의 달. 우리는 이들 모두가 10용이길 바라지만 동시에 10액(十額)이 될까 두렵다. 지금 정치판은 구직난이 아니라 구인난이다.
복제인간때문에 시끄럽던 지난달, 한 대학 신문사가 재학생들에게 복제하면 안될 인물을 물었을때 김일성과 이완용·히틀러·YS등이 꼽혔다는 이 불행한 풍자, 더하여 복제하고픈 인물 3위에고 박대통령이 올랐다는 해학적 사실은 지각있는 표현인가 아닌가. 이 점에서 매일신문이 4월 1일부터 연재하는 실록소설 '청년 박정희'의 전개는 지켜볼 만하다.
*'네탓' 범람하는 정치문화
어떤 직장이든 단체든, 친구끼리든 요즘 모임의 화두는 어쩔수없이 정치판에서 시작된다. 온나라가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 이상 공통된 화제가 없고, 또 씹는 맛이 괜찮기 때문이다.이후락의 떡고물은 이미 고전(古典)이다. '실세와 허세' '몸통과 깃털' '뇌물과 정치자금'… 이 '탓'의 정치문화가 대한민국 사람들을 모두 피해자로 만들어버렸다.
가해자는 없는 세상-. 교차로의 끼어들기는 체증 탓이고, 불법주차는 시설 탓, 아파트 50평에서적십자 회비는 '많다'고 안내고, 뇌물은 '억지로 주니까' 받았다. 싸움은 '네가 먼저 때렸고', 핏대도 저쪽에서 먼저, 문제아는 친구 탓, 불경기는 정치탓, 고3의 늦잠은 엄마 탓이다.*적어도 사양하면 남는법
YS·DJ·JP와 이회창신한국당대표의 '3金 플러스' 회담이 어제 있었다. 경제난국에 초당대처한다는 합의가 발표됐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는 위기의식을 과연 느낀 것일까.3金의 십팔번 신년휘호도 바뀌었다. 대도무문(大盜無門)의 폄하에 질린 탓인지, 김대통령은 유시유종(有始有終)을 썼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사람들이 안믿어준다고 여긴 것일까. DJ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썼다. JP는 '흘러간 물레방아'가 듣기 싫어서인지 즐겨쓰던 상선약수(上善若水:최상의 선은 물 흐르듯이 하는 것)대신 참 어려운 문자를 썼다. 줄탁동기(口卒啄同機). 병아리가 빨리 껍질을 깨고 나오려면 (어미는)밖에서, 새끼는 안에서 '쭉쭉톡톡' 함께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세 휘호 모두 다소 추상적·관념적인 것에서 구체적·현실적인 감각으로 옷갈이한 셈이다. 대선의 현실을 깨달은 것인가.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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