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팔만대장경(국보 제 24 호) 보존시설이면서도 팔만대장경의 명성 못지않은 평가를 받으며국보의 자리를 꿰찬 팔만대장경판고(국보 제 52 호).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장경각으로도 불리는 장경판고는 5백년 풍상을 겪고서도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온전하게 보존한 신비가 담겨 있기때문이다.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면서 최적의 보존조건을 도출한 지형배치, 단순한 듯하면서도 한 치의 오차없는 온·습도 조절장치는 현대 건축기술도 흉내낼 수 없는 우리 전통건축의 탁월성 그 자체다.종림스님(대장경연구소 소장)은 "5백년이 넘었는데도 벌레나 좀이 생기지 않는 통풍신비와 자연과 합일된 전통 건축원리는 대장경보존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불가사의하다 못해 신비에 가까운 건축물"이라고 평가했다. 장경판고는 1399년 조선 태조때 강화도에 보관중이던 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면서 건조되기 시작해 조선 성종때인 1488년 완성됐다.
해인사 경내 대적광전 뒤의 석축기단위로 올라가 보안당을 지나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수다라장(修多羅藏)과 법보전(法寶殿)이 나타난다. 남쪽의 것이 수다라장(하판당. 60·.54m×898m), 북쪽의 것이 법보전(상판당. 60.65m×8.74m)으로 마주보며 긴 일자형배치를 하고있다. 그좌우에 동·서 사간고가 대칭으로 놓인 장방형의 건물배치를 보이고 있다. 장경판고는 사계절 밤낮에 따라 산풍과 곡(谷)풍의 영향을 일정하게 받는 천혜의 땅에 위치함으로써 대장경을 수백년동안 훼손없이 보존, 국보의 반열에 오를수 있었다.
장경각이 자리잡은 곳은 가야산 정상의 두리봉, 남산의 깃대봉, 단지봉 등에 둘러싸여 있고 바로앞에는 비봉산이 마주하고 서있다. 이런 지형때문에 강풍일지라도 양측의 높은 산에 순화되고 태풍의 위세도 이곳에서는 주눅들어 순풍이 되고야 마는 명당에 자리잡았다.
풍속이 초당 8m 이하일때는 지세를 따른 평행기류의 순풍, 8~15m일 때는 약간의 소용돌이가 섞인 평행바람이 북측방향의 계곡과 신부락이 있는 서측계곡 사이를 오가 장경각은 늘 시원한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런 지형조건을 이용했기 때문에 특별한 방풍시설 없이도 대장경판의 온·습도변화를 최소화시켜 경판의 뒤틀림과 곰팡이 번식을 막을 수 있었다.
해인사 대장경연구소가 지난해 낸 장경판고의 온·습도 및 생태분석 보고서에따르면 해인사지역은 주변 지역보다 오히려 습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인사는 비교적 습기가 적은 지역으로알려져왔으나 이것을 뒤엎는 결과다.
그러면 목판보존에 적합한 기후조건은 어떤 상태이며 장경판고의 습도는 어느 수준이었나.이태영 박사는 "목판의 경우 습도는 60~70%%가 적당하며 너무 낮은 경우 뒤틀리기 쉽고 너무높아도 썩기 쉬운 특성이 있어 적정습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해인사주변의 습도는 70~80%%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고 연중 인근 지역보다 6~10%% 정도 높다"고 말했다.이런데도 경판이 손상없이 보존돼온 것은 해발 645m에 있는 판고의 위치가 3개 계곡이 만나는지점으로부터 1km쯤 북쪽에 배치돼 바람이 항상 불면서 자연적인 습도조절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장경판고의 신비중의 또 하나는 앞뒤 벽에 서로 다른 크기의 붙박이 살창(환기창)을 만들어 바람이 내부로 들어와 한바퀴 회전을 거쳐 돌아나가도록 설계한 것. 겉보기에는 단순한 듯하지만 이환기창의 독특한 통풍구조가 경판전을 온전히 보존케한 당시 하이테크 건축기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벽을 상하로 나눠 붙박이 살창을 14~15개씩 위아래로 배치했는데 크기가 모두 다르다. 64개의 창이 달린 수다라장 앞 벽의 경우 위창은 아래창의 4분의 1 크기밖에 안되고 뒷벽은 위창이 아래창의 2배 크기다. 68개창이 설치된 법보전 앞벽은 위창이 아래창보다 작지만 앞뒤벽 아래창 모두수다라장의 위창보다 크게 만들어졌다.
창의 크기가 모두 다른 것은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온·습도를 조절하기위한 것이다. 자연의 원리를 체득한 당시의 건축기술은 환기창의 위치와 크기로 최적의 상태를일궈내 합리적인 환기작용을 창출했고 이 건축기술로 팔만대장경은 5백년 풍상을 겪고도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판고의 시설자체도 훌륭한 온·습도 조절기능을 하고 있는데 경판보관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건물내부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단순함에 그치지 않고 수백년뒤의 현대건축기술을 비웃듯 치밀하게 연구된 고도의 건축기술임이 입증되고 있다.경판은 5단으로 설치된 판가 각 단에 빼곡이 세워져 있는데 경판사이의 일정한 틈을 통해 밑에서부터 맨위까지 바람이 골고루 지나면서 습도를 조절해주고 있다.
대장경연구소 진화스님은 "경판표면의 습도가 하루에 최고 50~60%%까지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하루에 수t의 물이 판고에 뿌려졌다가 마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이것은 한여름 수분증발때 열을 빼앗음으로써 온도조절도 겸해 곰팡이나 벌레 등의 서식을 막아주는 기능도 하고있다는 것.
위치에 따른 판고전체의 온도차가 1.5~2도 밖에 되지않는 것은 절묘한 지형배치를 이용한데다 신비의 통풍구조를 만들었기때문에 가능했으며 여기에 현대 건축기술로도 따르기 힘든 과학성과 독창성이 내재돼 있다.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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