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실시된 이스라엘 총선에서 극우 민족주의자 벤자민 네타냐후 리쿠드당 당수의 당선은미국의 주도로 급진전을 보이던 중동평화협상을 또다시 미궁에 빠뜨린다. 2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최대 난제로 지목되는 중동평화문제가 다시 쳇바퀴를 돌기 시작한 것이다.팔레스타인 주민들은 1월 20일 역사적인 자치선거를 통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수반으로 자치정부를 구성한다.
그러나 오슬로협정에 따른 자치과도기간이 끝나는 99년 5월 이후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반드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의 팔레스타인의 지위에 관한 최종협상을 거쳐야 한다.이와 관련, △팔레스타인 독립국 창설 반대 △동예루살렘 최종지위협상 거부 △골란고원 반환거부등 3불(不)방침을 다짐한 네탸냐후는 유태인 정착촌 확대를 강행하고, 골란고원에 병력을 증파하는 등 대(對)아랍 강경정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네타냐후의 등장으로 91년 마드리드 협상을 시작으로, 93년 오슬로협정과 95년 타바협정을 거쳐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구성에 이르는 지난 5년간의 평화정착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가 닥친 것이다.
아랍권은 네타냐후 정권 출범 직후에 공동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범(汎)아랍정상회담을 개최, 이스라엘에 대해 '평화와 점령지 교환원칙'등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중동이 다시 '긴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취임석달이 지나도록 협상파트너인 아라파트와 대면도 않는등 오만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위기를 느낀 아라파트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청년회관 폐쇄를 계기로 총파업이라는 강경카드로이스라엘을 압박, 9월초 네타냐후와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다.
이 회담은 결국 이스라엘군의 헤브론 철수시기 등 중대현안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1시간만에결렬된다.
20여일후 예루살렘의 고대 지하터널 개통으로 촉발된 유혈사태로 70여명이 사망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자, 대선을 한달 앞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다급하게 두정상을 워싱턴으로 불러 회담 테이블에 앉힌다.
그러나, 회담은 다시 소득없이 끝나고 '중동의 해결사' 미국도 중재능력의 한계를 드러낸다.아라파트는 최근 네타냐후 정부가 '극단주의 지연전술'로 기존 평화협정을 와해시키려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중재를 호소하고 있다.
선거에서 박빙의 승리를 거둔 네탸냐후 총리는 다수의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의평화해결을 바라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나 집권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극우성향의 세력도 저버릴수 없는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93년 오슬로 협정을 언급한 클린턴의 지적처럼 "3년간 먼길을 걸어왔으며 이전으로되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국가수립으로 비롯된 중동분쟁이 가장 자연스런 귀결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로50년만에 막을 내리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呂七會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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