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산실 군위 인각사

입력 1996-11-23 14:08:00

"옛적 九山門都會가 두번씩이나 열린 거찰"맑은 햇살이 산천에 퍼지는 영롱한 만추의 오후. 삼국유사의 산실 군위 인각사를 찾아 나서는 길은 가을을 마감하는 짙은 풍경으로 우수가 짙다.

구안국도 이어진 길을 얼기설기 따라 한참 달리다 군위가기전 효령에서 우보로 빠져나와 의흥을거쳐 학성리의 계곡 옆길을 타고 가다보면 오른편에 인각사가 보인다.

나지막한 절채, 황량한 터가 옛적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가 두번씩이나 열린 거찰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절 앞으로는 깎아지른 절벽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학소대, 절뒤쪽으로는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포근한 느낌의 화산이 인각사를 감싸고있다.

절입구에 들어서니 허물어지고 있는 대문이 폐허를 방불케한다. 원형 가람배치를 위한 성역화작업 때문이란다.

다행히 일연선사의 체취를 찾아볼 수 있는 흔적이 몇군데 남아있긴 하다.보각국사탑과 일연선사추모비.

조그마한 탑신이 옛날 대웅전터를 쓸쓸히 지키고 서있다. 뒤편에는 아담한 비각안에 일연추모비가 모셔져있다. 그러나 비석은 깨어져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있다. 돌을 깎아 가루를 마시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풍문때문인지, 임진왜란 당시 왜인들의 만행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은 알수가 없으나 2천2백여자의 왕희지 유필을 집자한 비석중 수십자만을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다.이들 유물은 인각사에서 2km 떨어져 있었으나 지난 62년에 이곳에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발굴조사로 밝혀진 대웅전 터는 15개의 큼지막한 주춧돌이 드러나 옛적의 위용을 엿보게한다.일연선사는 1284년에서 1289년까지 5년간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했다.

그러나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하던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분간하기가 힘들다. 오로지옛적의 영화를 더듬어 상상의 나래를 인각사 곳곳에 펼쳐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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