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입력 1996-10-11 00:00:00

"性 상품화와 公共윤리"

어느새 성은 우리사회에서 큰 돈벌이를 제공하고 있다. 예전엔 사사로이 은밀하게 통했던 성이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끼어든다. 각종 광고물, 잡지, 영화, 러브호텔, 섹스숍, 인터넷 등 성이 상품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이루 다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몇해전만해도 이런 현상을 규제하는데 우리사회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일반적 정서가 성을 매개로 한 돈벌이에 대하여 큰 거부감을 드러냈었고, 그렇기에 성의 상품화를 억누르는 갖가지 제도적 장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많이 변하고 있다. 이달들어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사전 심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또 대구시에서는 섹스타운 건립을 통해 관광산업을 진흥시키려는 안을 검토한다는 발표가 반발에 부딪혀 없었던 일이라고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가치관 혼란의 시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표현의 자유 및 행복추구의 권리라고 하는 인간기본권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실질적인 음란물 규제장치의 무력화로 인해 미디어 전부분에 걸쳐 음란물이 기승을 부리게될 것을 우려해 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들의반대로 일과성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대구시의 발상에 대해, 침체한 지역경제를살릴 수 있는 호재를 놓친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섹스문제상담연구소, 섹스관련기기및 강정약품 개발.제작.판매소등을 동일구역내에 설치운영하면 세계적 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지 않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성상품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 상당한 편차를 드러내고있는 형편이다. 성이라면 아직도 혼인부부간에만 해당되는 문제로 인식하는 수준에서부터 성은 여타의 인간욕구처럼 언제라도 원하는 방식으로 충족되어져야한다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그 격차가 무척 큰 것이다.

돈이 된다고 해서 성을 상품으로 만들어서는 인륜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무엇이든지 적절히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는 일이야말로 성공의 첩경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실 어느 입장이 절대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란 힘들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현실은 이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성문제의 답을 구하는 절차에 대한 합의도 없을 뿐아니라 답을 구하려는 공동의 시도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데에 더 큰문제가 있다. 솔직히 말해, 다양한 사상및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그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추상적인 윤리규범을 내세우면서도 실현가능한대안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양상이 반복되어 왔다. 특히 역사와 문화가 다른 사회의 경험에서 나온 이론들을 막무가내로 우리 사회 분석에 대입하는 성급함이진보적인 것으로 인정받으면서 우리의 혼란을 가중시켜 왔다.

공동체적 합의시급

두말할 나위 없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성적욕구 충족은 무진장한 시장이다. 그리고 사회현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피조물인 돈보다 그 인간 자체를 더 고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만 사는 것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 지속적으로 인간의 천부권을 규명하고 인격의 고유성을 천명하는 일을 소홀히 하려야 할수 없다. 곧 최소한의 공공윤리라도 거듭 확인해가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적인 사회와 원칙이 없는 사회는 서로 다르며, 자본주도의 경제와 자유방임의 경제는 결코 같지 않다.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민주주의 국가이고, 경쟁에도 질서가 앞서야 자본주의 사회이다. 성문제는 인간에게 그야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사항이다. 이 문제해결로부터 면제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지금부터라도 성을 은폐하거나 왜곡시켜 성역화(聖域化)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성역(聖域)을 보살펴야 할 것이다.

〈경북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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