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이후-정국 어디로....

입력 1996-04-15 14:19:00

"겉은 '大權불변' 속은 '갈림길'"

4.11총선 결과 신한국당은 의석이 1백39석으로 선거전보다 8석이 줄었고 국민회의는 79석으로 25석이 늘었다. 수치상으로는 신한국당은 패했고 국민회의는이긴 것이다.

金大中국민회의총재는 측근을 통해 우리는 지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패하지 않았다면 승리한 것임에도 승리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 金총재는어둡기만 하다. 12일오전 선대위회의 주재이후 일산자택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長考에 들어갔다고 한다.

金총재는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이 선거기간 내내 강조해 온 논리 가운데 가장중요한 네 가지가 무너지는 경험을 당했다.

첫째 국민회의가 지역당이 아니라 전국당이라는 논리다. 특히 큰 소리치던 서울등 수도권 지역에서는 참패에 가까운 결과를 낳았다. 총선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는 여당에 제1당의 자리를 넘겼다. 湖南표만 얻었지 플러스 알파는 없었다. 선거전 지지층이 釜山.慶南에 한정돼 있는 신한국당이나 忠淸권에 머물고있는 자민련과 달리 우리는 전국당 이라던 이야기는 쑥 들어가버렸다.

둘째 국민회의 창당에 대한 당위성이다. 국민회의 제 1의 패인은 뭐니뭐니해도야권표의 분산 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金총재의 서울.京畿에서 대부분차점자가 많았다 는 말처럼 여의도입성 문턱에서 눈물을 삼킨 후보들이 많았다. 민주당후보와 득표수를 단순 합산하면 압승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6.27지방선거에서 25개 서울지역 구청장 가운데 23개를 석권한 민주당의 승리와 비슷한결과를 낳을 수 있는 수치였다.

셋째 金총재는 이번 선거를 金泳三대통령 집권 3년에 대한 중간평가 라고 했다. 독선과 독주 독단의 3독정치를 심판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으나 결과는신한국당의 선전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은 金대통령에 대한 심판을내렸다기 보다 金총재의 행보에 대한 심판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선거기간동안 명년 대사를 위해 표를 달라 고 호소했다. 湖南에 가서는 후보를 보지말고 나를 봐서라도 국민회의를 찍어달라 고 했다.71년 대선이후 키워온 꿈을 실현시킬 마지막 기회 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러나 대선의 전초전으로서, 즉 자신의 대권가도를 닦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점을 강조한 부분이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금 金총재는 대권도전 4修여부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는 아직 이에 대해 말이 없다. 또 당분간도 없을 전망이다. 적어도 선거결과에 대한 충격에서 당이나자신이나 벗어날 시간적 여유는 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선거결과를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의 40%가 우리를 지지했다 고분석했다. 돈이나 안보논리의 영향을 덜 받는 층이기 때문에 상당한 희망을갖게 하는 내용 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그는 다만 몇가지 문제점만 보완하면내년에는 우리가 유리할 수 있다 는 말로 대권4修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시사했다. 당내에서 조심스레 흘러나오는 2선후퇴 대권代打 설을 일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분간 大權이야기는 국민회의에서 금기시 될 전망이다. 金총재는 선거이전부터 총선결과와 국민의 뜻을 지켜본 뒤 연말께나 가서 결정하겠다 고 말해왔다. 따라서 선거충격에서 벗어날 시간도 벌 겸 연말까지 두고 보자 는 작전을 전개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

더구나 저마다 대권후보 반열에 오르려는 여권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金총재로서는 급할게 없다 며 여권의 惡手를 기다릴 가능성도 높다. 여권이 대권을 놓고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나아가 여권이 분열하는 상황이라도 벌어진다면더더욱 환영할 일임에 틀림없다.

한편 야권의 兩金중 한 쪽인 金鍾泌자민련총재와의 관계도 金총재의 행보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세대교체라는 거센 물결을헤치고 나가야 할 동지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제휴의 길을 당분간 모색할 가능성은 높다. 특히 여권의 세대교체 바람에는 한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그러나체질상 또 생리상 두 사람의 공조는 더이상도 더이하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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