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김채한-사회2부장)-어떤 늑대와 양

입력 1996-01-17 14:12:00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날 갑자기 늑대를 만난 양은 그만 기절하고 만다. 충격때문이다. 마침 배불리 식사를 끝낸 직후여서 늑대는 양을 잡아 먹을 생각이 없다. 대신 양이 깨어나 자신에 관해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을 세마디만 하면 살려주기로 작정한다. 한참만에 깨어난 양은늑대의 이런 요구를 받고 이왕 죽은 목숨 하고는 거침없이 다음과 같은 세마디를 늑대 면전에다대고 퍼붓듯이 말한다.

'말'이 난무하는 世態

당신을 만나는 그 자체가 싫다는게 첫마디다. 운수 사납게도 또 다시 당신을 만난다면 당신이 눈먼 늑대이기를 빌뿐이라는게 두번째다. 끝으로 평화롭고 순한 우리들을 못살게 구는 당신들 늑대를 모두 죽여 버리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양은 살아 남는다.

망상이지만 요즘 이런 늑대와 양이 있을까. 아무리 시설 좋은 유명한 동물원이라도 이런 늑대나양은 없다. 우리속에 갇힌 늑대는 그저 늑대요 양 또한 양일 뿐이다. 동물원 테두리를 벗어난다해도 별반 달라지는게 없다. 오로지 냉엄속에 질서를 이뤄가는 동물의 세계만 있을따름이다. 그들에게 이솝우화같은 우화 또한 있을리 없다.

말이 너무 난무하고 있다. 그만큼 말을 많이 하도록 여러가지 조건이 향상된 탓도 있다. 신문지상에는 백화점 유명 코너같이 말만 다루는 코너도 어느듯 정착돼 인기를 끌고있다. TV의 뉴스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도 그 향상된 조건에 해당된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PC통신 속의 말도 빼놓을수 없다. 이처럼 말을 위한 시간과 공간은 우리들 주위에는 무한정이다.

최근의 전직 두 대통령 구속과 기라성 같은 재벌들이 줄줄이 검찰마당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더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이 기막히는 현장을 보고 한 마디씩 입을 열지 않을수 없다. 말을 많이하도록 정치.사회적인 여건이 지나치게 잘 조성되고 있다는 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총선 公害'벌써 걱정

곧 총선도 있다. 또 얼마나 우거지는 말의 숲속에서 지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해로운 담배연기를 마시지 않을 권리는 점차 보장되고 있는 마당에 쓸데 없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권리마련은 아직 요원하다. 어쩌면 이러한 권리는 영원히 찾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바른 소리가 아쉬운 시대다. 직언을 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직언후에 빚어질 후유증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조직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그 조직이가정이든 직장이든 심지어 국가든 마찬가지일것이다. 큰 귀를 가졌다해서 꼭 바른 소리를 잘 듣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우리는 지난 정권때 절실히 경험하질 않았는가.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은 직언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 마련이다.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역시 말들이 많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대선자금 이야기가 한동안 떠들썩하게 분위기를 돋우는 것 같더니 다시 잠잠해지고 그러다가 또 불쑥 튀어나오다가는 쑥 들어가고하는게 너무 이상하다. 하도 이상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까지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혹자는 정말 이솝우화의 양같은 상식을 뛰어넘는 용감한 현대판 양이 나와 똑 부러지게 국민들의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한편, 왜 그 늑대같은 신사도가 섞인 넉살이 우리들에게는 없느냐고 한탄하기도 한다.

'바른소리'크게 들려야

프랑스의 비평가 생트뵈에브는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사람을 결코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고 했다. 그렇다. 이솝의 늑대와 양이 없다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자. 지금 우리에게 그 늑대와 양이 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