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도 렘수면 한다…수면 박탈 후 80% 더 많이 보상

입력 2026-10-28 10:35:46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독일 본 대학 연구진, 호주 깡충거미 Portia fimbriata서 수면 2단계 행동 증거 확인

거미도 사람처럼 수면 단계를 겪으며 잠을 자지 못하면 렘수면 유사 행동이 크게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AI 생성 이미지)
거미도 사람처럼 수면 단계를 겪으며 잠을 자지 못하면 렘수면 유사 행동이 크게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AI 생성 이미지)

거미가 사람처럼 두 단계의 수면을 경험하며, 수면을 빼앗기면 이후 렘(REM)수면 유사 행동이 최대 80%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본 대학 유기체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이 호주 깡충거미 Portia fimbriata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 2026년 123권 45호에 실렸다.

이번 연구는 거미가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진정한 조절된 수면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행동 실험으로 종합 확인한 첫 사례다. 수면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리고 전혀 다른 신경계를 가진 동물들이 수면의 핵심 특성을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도 함께 제기됐다.

연구 대상인 호주 깡충거미 Portia fimbriata는 다 자라도 1유로 동전 크기 정도다. Portia속 거미는 다른 거미를 주요 먹이로 삼으며, 거미줄에 걸린 곤충이 버둥거리는 진동을 흉내 내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유인하는 등 정교한 사냥 전략을 구사한다. 이처럼 복잡한 행동은 이 거미가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췄음을 시사하며, 수면과 신경계 기능, 인지 능력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적합한 대상으로 꼽힌다. 낮에 주로 활동하며 시각에 의존하고, 야간 휴식 자세가 뚜렷해 수면 행동 관찰에도 유리하다.

연구진은 지름 12cm의 소형 플라스틱 접시에 거미를 한 마리씩 넣고 여러 날에 걸쳐 조명 조건을 달리하며 주야간 리듬을 기록했다. 야간 촬영에는 적외선 카메라를 활용해 가시광선 없이도 수면 자세, 휴식 단계, 렘수면 유사 단계를 세밀하게 포착했다. 고해상도 영상을 여러 날 밤에 걸쳐 수집하는 작업이어서 분석해야 할 데이터 양도 방대했다.

관찰 결과 거미는 두 가지 뚜렷한 수면 단계를 보였으며, 그 중 하나는 안구 움직임과 근육 경련을 특징으로 하는 렘수면 유사 상태였다. 렘수면 유사 단계에서 거미는 다리 떨림, 구기 경련, 망막관 움직임을 나타냈다. 이는 사람과 다른 척추동물의 렘수면에서 나타나는 행동과 유사하다.

거미가 단순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잠든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음향 자극을 이용해 반응 시간을 측정했다. 거미는 수면 중 자극에 반응하는 속도가 뚜렷이 느려졌으며, 이를 통해 수면과 단순 비활동 상태를 구분할 수 있었다. 다만 거미는 사람과 감각 방식이 달라, 연구진은 먼저 실험에서 일관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적절한 음향 자극을 찾아야 했다.

수면 박탈 실험에서도 중요한 결과가 나왔다. 수면이 방해된 거미는 이후 렘수면 유사 행동을 약 80% 더 많이 보이는 수면 반동(sleep rebound) 현상을 나타냈다. 이는 거미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잠을 자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연구에 참여한 본 대학 행동생태학자는 "거미에게 뚜렷한 수면 단계가 있으며, 수면 구조가 척추동물의 수면 핵심 특성을 예상보다 훨씬 더 가깝게 반영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거미의 뇌 활동을 직접 측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한계로 인정했다. 행동 관찰, 반응 시간 측정, 수면 박탈 실험을 결합해 수면 상태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에 의존했다. 렘수면 유사 움직임이 관찰됐다고 해서 거미가 실제로 꿈을 꾼다는 의미는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이번 발견은 거미 연구를 넘어 더 넓은 함의를 갖는다. 수면에 관한 과학적 이해는 오랫동안 포유류와 조류 같은 척추동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전혀 다른 신경계를 가진 동물에서 유사한 수면 특성이 확인된다면, 서로 다른 수면 유형이 언제, 왜 진화했는지를 밝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연구진은 행동과학, 신경과학, 생체리듬 연구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본 대학 연구진은 앞으로 렘수면 유사 수면이 거미 종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자연환경과 실험실 환경에서의 수면 차이도 조사할 계획이다. 수면과 인지 능력의 관계, 그리고 야간 인공조명(ALAN)을 비롯한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이 거미와 다른 절지동물의 수면 패턴에 미치는 영향도 연구 대상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