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사라진 동네에서] (1) "우리 동네엔 서점이 없어요"

입력 2026-11-02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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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구 서점 324곳…현재는 100여곳 생존
전국 무서점 지역 중 절반이 경북…실물책 보려면 대구·안동·영주로
유통·경영 환경 상 지역 서점은 가격 경쟁력에서 완패
"정부와 지자체의 과감한 정책적 전환이 필요"

지난달 31일 봉화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의 한 서점을 찾아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연 기자
지난달 31일 봉화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의 한 서점을 찾아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연 기자

"때로 천국이란 끝없이 지속되는 독서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1934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쓴 문장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누군가에게는 우연히 집어 든 한 권의 책이, 또 누군가에게는 마음껏 책을 고를 수 있는 서점이 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만나는 일조차 마음먹고 길을 나서야 가능한 동네도 있다.

올해 초 봉화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졸업여행으로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을 찾았다. 아이들에게 그곳은 책을 구입하는 서점이자 온갖 콘텐츠가 가득한 또 다른 놀이터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는 경북 봉화군에는 책을 살 수 있는 서점이 단 한 곳도 없다. 가장 가까운 서점에 가려면 이웃한 영주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사라지는 서점

동네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 구매와 임대료 압박 속에서 대구와 경북의 지역서점들이 소멸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2005년 324곳에 달했던 대구의 순수서점 수는 최근 100곳 안팎으로 급감했다. 여기서 순수서점은 문구류 판매 등을 겸하지 않고 도서 판매를 주된 영업으로 하는 서점을 뜻한다. 20년 만에 서점 3곳 중 2곳이 자취를 감춘 셈이다.

그나마 지자체 공공도서관 우선구매 혜택 등과 연계된 대구시 '지역인증서점'은 2024년 180여 곳에서 2025년 190여 곳, 2026년 현재 197곳으로 소폭 늘었다. 지역인증서점은 지자체가 별도의 요건을 심사해 지정하는 것으로, 문구류 판매 여부와 관계없이 인증 기준을 충족하면 등록할 수 있다. 따라서 순수서점과 지역인증서점은 집계 기준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온기가 돌아온 결과가 아니다. 벼랑 끝에 선 소규모·독립서점들이 공공 지원이라는 '생존 밧줄'을 잡기 위해 줄지어 등록을 마친 현실이 반영된 까닭이다.

경북의 사정은 한층 더 심각하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4 지역서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지역서점이 단 한 곳도 없는 기초지자체 6곳 가운데 절반인 3곳이 경북에 쏠려 있다. 청송군과 봉화군, 울릉군이 대표적인 '서점 사막'이다. 서점이 단 한 곳만 남은 지역도 전국 21곳에 달하며, 경북에서는 영양군과 고령군, 성주군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나마 남아있는 서점조차 포항·구미·경주·경산 등 인구 밀집 도시에 60% 이상 쏠려 있다.

살아남은 서점들 역시 사정이 좋지 않다. 연매출 1억 원 미만인 지역서점이 전체의 49.5%로 절반에 달했다. 2억 원 미만까지 범위를 넓히면 10곳 중 7곳(65.9%)에 이른다. 하루 동안 매장을 찾는 고객은 평균 35.6명. 운영 인력의 83.3%는 1~2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영세한 인력과 적은 방문객에 의존해 하루하루 버텨내는 실정이다.

지난달 31일 봉화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의 한 서점을 찾아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연 기자
지난달 31일 봉화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의 한 서점을 찾아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연 기자
지난달 31일 봉화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의 한 서점을 찾아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연 기자
지난달 31일 봉화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의 한 서점을 찾아 책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연 기자

◆책을 고를 곳이 없다

봉화초 6학년은 단 1개 학급, 14명의 아이들이 전부다. 이 가운데 올해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산 경험이 있는 학생은 6명이었다. 올해 책을 몇 권이나 샀는지 묻자 아이들은 1권에서 10권 사이로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놨다. 만화 '흔한남매'와 '주술회전',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추리소설, 배구선수의 삶을 다룬 소설, '신경 끄기의 기술'까지 읽는 책도 다양했다. 책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아쉬워한 것은 직접 책을 살펴보고 고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학생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재미있으면 사서 천천히 보고 싶은데, 구매하려면 먼 곳의 서점을 찾아가야 해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 역시 "온라인에서는 미리보기로 일부 페이지만 볼 수 있어 책을 직접 훑어보고 사고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담임인 우승완 봉화초 교사는 올해 졸업 여행으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던 일을 떠올렸다. 우 교사는 "다음 일정이 있는데 아이들이 책 고를 시간이 부족하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말했다.

서점 부재로 인한 불편은 청송도 마찬가지다. 청송중학교 1학년 최은성 학생은 "올해는 서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책을 구입할 돈이 있어도 직접 구매할 수 없어 아쉽다"며 "책을 구매하려면 안동이나 대구로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울릉도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박모(33)씨는 온라인 구매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서점 부재가 더 큰 장벽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박 씨는 "할아버지가 온라인 도서 구매를 위한 회원 가입과 로그인, 주문 절차를 어려워해 어머니가 대신 책을 주문해줬다"고 전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주민이 같은 편의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책을 직접 고를 기회가, 어르신들에게는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구입할 선택지가 부족한 셈이다.

대구의 한 서점에서 아이들이 책을 구경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대구의 한 서점에서 아이들이 책을 구경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대구의 한 서점에서 아이들이 책을 구경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대구의 한 서점에서 아이들이 책을 구경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버티기 힘든 동네서점

지역서점의 몰락은 소비 패턴의 변화와 함께, 소규모 동네 서점이 구조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유통·경영 환경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구매 채널의 이동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종이책 구매 시 가장 먼저 이용하는 경로로 인터넷서점(41.2%)을 꼽은 응답자가 지역서점(11.7%)보다 3.5배 이상 많았다. 검색 한 번으로 재고를 확인하고 익일 배송까지 받는 온라인 생태계 속에서 공간과 재고가 한정된 동네 서점은 1차 선택지에서 밀려났다.

여기에 '도서정가제'의 허점과 불공정한 공급률(사입가) 구조가 동네 서점의 발목을 잡는다. 온라인 서점은 10% 가격 할인에 5% 적립을 더해 사실상 15% 할인을 제공한다. 반면 무료 배송이나 추가 적립 혜택을 주기 어려운 동네 서점은 가격 경쟁력에서 완패할 수밖에 없다.

대형·온라인 서점은 대량 주문을 무기로 정가의 60% 안팎에 책을 공급받지만, 소규모 지역 서점은 중매인을 거치며 70~75% 수준의 높은 가격에 책을 받아온다. 같은 책을 팔아도 동네 서점이 손에 쥐는 마진이 훨씬 적은 기형적 구조다. 매출이 1억원이라고 해도 책을 공급받는 데 드는 비용을 제외한 수익으로 임대료와 관리비, 인건비 등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굿즈 판매나 북카페, 공간 대여 등 사업 다각화로 활로를 모색하는 서점이 늘고 있지만, 지방 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은 이마저도 수용할 배후 수요가 없다. 개별 사업자의 자구책이나 복합문화공간 전환만으로는 지역의 '서점 소멸'을 막기에 한계가 있는 이유다.

오명영 한국서점연합회 회장은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과 사람, 지역을 연결하는 문화의 뿌리다. 지역서점이 사라지면 지역문화의 공공적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도서정가제라는 법적 울타리를 지켜내는 것은 물론, 서점 문화 프로그램 및 출판 인프라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과감한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