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에서 복부 CT를 촬영한 뒤 "간에 혹이 있습니다", "췌장에 작은 물혹이 보입니다"라는 설명을 듣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평소 특별한 증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혹'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암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CT에서 발견되는 혹이 모두 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낭종이나 혈관종처럼 특별한 치료 없이 지켜봐도 되는 양성 병변도 많다. 중요한 것은 혹이 발견됐다는 사실 자체보다 어떤 성격의 병변인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다.
복부 CT는 간과 담낭, 췌장, 비장, 신장, 부신은 물론 장 주변과 복부 혈관, 림프절까지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검사다. 특히 복부초음파로 확인하기 어려운 췌장이나 복강 깊숙한 부위를 관찰하는 데 유용하다. 조영제를 사용하면 병변의 형태와 혈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 양성과 악성을 구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건강검진에서 비교적 흔하게 발견되는 병변은 간의 낭종이나 혈관종이다. 대부분 별다른 치료가 필요하지 않지만 모양이나 크기, 조영 양상이 전형적이지 않다면 추가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췌장에서도 증상 없이 작은 낭종이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발견 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췌장에 물혹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암이나 암 전 단계라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CT 검사 후 MRI 촬영을 추가로 권유받고 불안해하는 환자들도 있다. 그러나 CT와 MRI는 어느 한쪽이 더 우수한 검사가 아니라 각각 장점과 역할이 다르다. CT는 짧은 시간에 복부 전체를 폭넓게 살펴보는 데 유리하고, MRI는 방사선 노출 없이 조직의 특성을 보다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다. 특히 간 종괴의 성격을 확인하거나 췌장 낭종, 췌관과 담관을 자세히 살펴볼 때 MRI가 도움이 된다. 따라서 MRI 검사를 권유받았다고 해서 암을 의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CT에서 확인된 병변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판단하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추적관찰이나 치료 여부도 단순히 혹의 크기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병변의 모양과 경계, 내부 성분, 조영 양상, 이전 검사와 비교한 크기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췌장 낭종의 크기가 커지거나 내부에 결절이 발견되고 췌관이 확장돼 있다면 MRI나 내시경초음파 등 정밀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반면 전형적인 단순 낭종이나 일부 양성 병변은 별도의 치료나 추적검사 없이 지켜볼 수도 있다.
건강검진의 목적은 숨어 있는 질환을 무조건 많이 찾아내는 데 있지 않다. 발견된 이상 가운데 무엇을 지켜봐도 되는지, 어떤 병변은 추가 검사가 필요한지, 언제 치료나 수술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검사는 줄이되 반드시 확인해야 할 질환을 놓치지 않는 균형 잡힌 판단이 필요하다.
검진 결과에서 '혹'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고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안심해서도 안 된다. 병변의 성격에 따라 경과만 관찰하면 되는 경우도 있고, 정밀검사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은 이상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진단을 거쳐 필요한 관리와 치료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복부 CT에서 예상하지 못한 병변이 발견됐다면 막연히 암을 걱정하거나 방치하기보다 전문의와 상담해 자신에게 맞는 검사와 추적관찰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구 일민의료재단 세강병원 김치호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