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조사 후폭풍]李대통령 '경자유전' 한마디가 몰고 온 농촌 후폭풍…농도 경북 직격탄

입력 2026-10-21 16: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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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매수세 위축에 고령농 처분난
농지담보대출 부실 확대…농촌 쇠퇴가 농협 기반까지 흔들

경북의 한 조사원이 농지조사를 위해 논과 농막을 살피고 있다. 윤영민 기자
경북의 한 조사원이 농지조사를 위해 논과 농막을 살피고 있다. 윤영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헌법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쓰여 있는데 온갖 방식으로 위헌 행위가 이뤄진다"고 발언했다. 연합뉴스

"헌법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쓰여 있는데 온갖 방식으로 위헌 행위가 이뤄진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 농지 전수조사의 후폭풍이 농촌에 거세게 불고 있다. 정부가 투기와 무관한 고령·상속·관행적 임대차는 처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지만, 농지 거래 위축과 고령농의 노후 불안, 지역농협의 담보대출 부실 우려까지 번지며 농도 경북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귀농하려던 마음 접었습니다"

부산에 사는 A(61) 씨는 부모의 고향인 영천의 논 1천여㎡를 계약하기 직전 매입을 철회했다. 논 한쪽에는 기존 소유주가 설치한 농막이 있었고, 농기계가 드나들 수 있도록 일부 구간이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었다. '농사짓기 편하게 잘 갖춰진 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9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마음을 바꿨다. 농지조사가 본격화하면서 농막과 포장 부분의 적법 여부를 따져봐야 하고, 문제가 확인되면 원상복구나 별도 인허가가 필요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어서다. 매입 이후 이전 소유주의 농지 이용 문제까지 떠안을 수 있다는 부담에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A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언젠가는 고향에 살고 싶다'며 사둔 시골집에서 귀촌·귀농을 준비했다"라면서 "이젠 농지를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 시골집도 팔고 부산에서 다른 노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50대 부부는 퇴직을 앞두고 고향인 성주의 한 시골마을로 귀촌할 생각이었다. 작은 농지를 사 직접 먹을 쌀과 채소를 기르며 여유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 농지 전수조사와 경자유전 논란을 접한 뒤 농지 매입 계획을 접었다. 직접 경작 의무와 향후 관리 부담이 발목을 잡았다.

부부는 "나중에 몸이 아파 직접 농사를 못 짓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농지 전수조사 이후 농지를 사려던 사람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고령농과 상속농은 농지를 내놓지만 사려는 사람은 규제와 관리 부담을 우려해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팔려는 사람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개발 수요가 있는 수도권과 달리 경북 산간 농촌은 매수자가 인근 농민으로 제한된 곳이 많다. 농사를 그만두려는 고령농이 땅을 내놔도 살 사람이 없고, 임대를 맡길 경작자조차 찾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농촌 현장에서는 이런 땅을 투기 목적 농지와 같은 틀로 볼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팔리지도 않고, 빌려줄 사람도 없고, 소유자가 직접 농사짓기도 어려운 농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농촌 반발이 커지자 투기성이 명백한 농지는 엄정 조치하되 고령·상속·관행적 임대차 등은 처분하지 않고 정상화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농지 매수 심리가 얼어붙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지를 내놓는 고령농은 늘고, 새로 들어오려는 귀농·귀촌인은 부담을 느끼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농지 거래뿐 아니라 농촌 인구 유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농지정책의 과제는 투기 차단과 함께 농사를 지을 사람에게 땅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길을 만드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경북의 한 농민은 "산골 논밭은 돈을 받지 않고 농사짓으라고 해도 맡을 사람을 찾기 어려운 곳이 많다"며 "앞으로도 이런 농지를 투기 목적으로 사둔 땅과 똑같이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농지값 떨어지면 지역농협도 흔들

농지시장 위축이 농촌과 농민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농협까지 흔들고 있다. 농지 거래가 줄고 담보가치가 떨어지면서 대출 부실과 경제사업 위축을 동시에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는 수치가 나왔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 농협중앙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8월 지역 농·축협의 농지담보대출 부실채권 매각 손실은 226억2천900만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98억7천100만원의 2.3배다.

같은 기간 농지담보대출 신규 취급액도 4조9천733억원에서 3조2천344억원으로 1조7천389억원 줄었다. 부실채권 원금 2천403억원 가운데 실제 회수액은 1천481억원에 그쳤다.

지역 농·축협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올해 8월 기준 전국 1천106개 농·축협 가운데 215곳, 19.4%가 적자를 기록했다. 대출 연체액은 20조9천억원에 육박했다.

이를 농지조사만의 영향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농촌의 대표 담보자산인 농지 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 장기화되거나 고착될 경우 지역농협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농촌의 쇠퇴다. 농사 지을 사람이 사라지면 농협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농민이 줄면 조합원도 줄고, 비료·농약·농기계 등 영농자재 사업과 농산물 판매·유통사업 기반도 함께 쪼그라든다.

농지 가격 하락은 농가 자산가치 감소와 대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농가와 농업 생산까지 줄면 지역농협은 금융사업과 경제사업 양쪽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농지 문제를 단순히 땅값이나 재산권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지역농협 한 관계자는 "농촌에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지면 농협의 존재 기반도 함께 약해진다"며 "농지 거래가 막히고 담보가치까지 떨어지면 금융 부담뿐 아니라 조합원 감소와 경제사업 위축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