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말벌 쏘임, 침 안 남는데 카드로 긁다 15분 쇼크 놓친다

입력 2026-10-16 16:43:20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꿀벌에만 맞는 카드 제거법, 말벌엔 감염·독 흡수만 키워 쇼크 1차 약은 에피네프린…8월부터 119구급차 비치 의무

장수말벌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장수말벌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단풍 산행이 몰리는 10월, 장수말벌 쏘임 사고는 번식기를 맞아 공격성이 가장 강해진 벌들 탓에 위험이 극에 달한다. 벌에 쏘이면 "신용카드로 침을 밀어 빼라"는 상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말벌에게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말벌은 애초에 침을 남기지 않는다. 카드로 긁는 동안 흐르는 시간이 오히려 목숨을 위협한다.

◆ 꿀벌 침은 남고, 말벌 침은 안 남는다

꿀벌과 말벌은 침의 구조부터 다르다. 꿀벌 침에는 갈고리가 있어 한 번 쏘면 침과 독주머니가 통째로 피부에 박힌 채 떨어져 나간다. 질병관리청은 이 경우 손톱이나 핀셋으로 집지 말고 카드로 밀어 빼라고 안내한다.

말벌은 반대다. 침이 주삿바늘처럼 매끈한 일자형이어서 쏘고 난 뒤 피부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국립공원공단과 산림청 국립수목원도 말벌류는 침을 남기지 않아 카드로 긁어낼 이유가 없다고 확인했다. 갈고리가 없으니 한 마리가 연달아 여러 번 쏠 수 있다는 점도 말벌이 더 위험한 이유다.

◆ 카드로 긁으면 독만 더 퍼진다

소방청 응급처치 가이드라인은 침이 없는 말벌 환부를 카드로 긁는 행위가 세균 2차 감염을 부르고 독소 흡수를 앞당긴다고 경고한다.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박히지도 않은 말벌 침을 카드로 세게 긁어내려다 연조직이 상하고 염증이 번져 실려 온 환자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소방청 119구조구급국은 시민들이 말벌과 꿀벌을 구별하지 못한 채 카드 제거법에 매달리다 현장에서 10~20분을 흘려보내고 병원 이송 시기를 놓친다고 지적한다. 바로 그 시간이 쇼크가 시작되는 시간과 겹친다.

◆ 쇼크는 15분 안에 온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진료 지침은 벌독 아나필락시스가 쏘인 뒤 대개 15분 안에 급격히 나타난다고 본다. 기도가 붓고 혈압이 떨어지는 전신 반응이다. 소방청이 지난 7월 낸 구조구급 활동 통계로는 벌 쏘임 사망자의 약 79%가 쏘인 지 1시간 안에 숨졌다.

질병관리청이 2023년 내놓은 응급실 손상환자 심층조사 5개년 분석에서도 벌 쏘임 사망자 24명 가운데 15명이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숨졌다. 이 자료에서 집계한 3년간(2023~2025년) 119구급대 벌 쏘임 이송 환자는 2만933명, 그 가운데 심정지에 이른 사람이 66명이다. 해마다 스무 명 남짓이다.

◆ 허벅지 바깥쪽에 10초, 에피네프린

아나필락시스의 1차 표준 약물은 에피네프린이다. 국립중앙의료원 대처 매뉴얼은 허벅지 바깥쪽 근육에 주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는 기도 부종을 누그러뜨리는 보조 요법일 뿐 에피네프린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 알레르기 학술지 지침의 결론이다.

질병관리청 사용 지침은 체중 30kg 이상 성인에게 자가주사기로 0.3mg을 투여하고, 주사기를 허벅지 바깥쪽에 대고 10초간 누른 채 유지하라고 안내한다. 국내에 유통되는 자가주사기는 젝스트프리필드펜주 한 종뿐이다.

다만 이 약은 전문의약품이다. 벌독 알레르기 진단을 받지 않은 일반 등산객은 약국에서 사 둘 수 없다. 유효기간은 1~2년으로 짧고, 비급여면 개당 5만~10만원대라 늘 지니고 다니기엔 부담이 따른다. 처방 가능한 병원도 지난해 7월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발표 기준으로 서울이 166곳인 반면 울산은 4곳에 그쳐 지역 격차가 크다.

빈틈을 메우는 것은 구급차다. 보건복지부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을 고쳐 지난 8월부터 119 일반구급차에 에피펜을 반드시 싣도록 했다. 산청소방서 관할에서는 제초 작업 중 벌에 여러 차례 쏘여 숨을 못 쉬던 50대 남성이 구급차 안에서 에피펜을 맞고 호전됐다.

◆ 어두운 옷 피하고 20m 달아나기

국립공원공단의 공격성 실험에서 말벌류는 검은색과 갈색에 가장 거세게 반응했고, 빨간색·초록색·노란색 순으로 약해졌다. 가을 산에서 밝은 옷을 권하는 근거다. 벌집을 건드렸다면 웅크리지 말고 머리를 감싼 채 20m 이상 달려 벗어나는 것이 소방청과 공단의 공통 수칙이다.

질병관리청 심층조사에서 벌 쏘임 사고는 주말에 절반 가까이 몰렸고, 환자 연령은 50·60대가 절반에 육박했다. 이 통계에서 이송 환자의 78.7%는 7~9월에 집중됐지만 사고는 10월에도 끊이지 않는다. 같은 심층조사 5개년 월별 분석에서 10월 한 달 벌에 쏘여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509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