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수술대' 올려야…30분 빨라도 요금 차이는 600원

입력 2026-10-15 17:30:00 수정 2026-10-15 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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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기준 운임 15년째…정차역·서비스 차이 반영 안 돼
정부 전략엔 '시간대·속도별 차등'…전문가도 "탄력적 운영"

KTX-청룡의 모습. 코레일 제공
KTX-청룡의 모습. 코레일 제공

서울에서 부산까지 30분 먼저 도착하는 KTX와 느린 KTX의 일반실 운임 차이는 600원이다. 거리 중심으로 값을 매기는 요금 체계가 15년째 이어지면서, 고속철도가 고급 교통수단에 걸맞은 서비스를 차별화해 내놓을 길도 막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차역 늘어도 값은 그대로…15년 묶인 운임

15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승차권 예매 앱 '코레일+'에 따르면 서울~부산 구간에서 대전·동대구에만 서는 KTX-청룡은 2시간18분이 걸리고 일반실 운임은 5만4천200원이었다. 같은 구간에서 7개 역에 정차하는 KTX는 2시간48분이 걸렸지만 일반실 운임은 5만3천600원이었다. 30분 늦게 도착하는 열차를 타도 600원만 덜 내는 셈이다. 지난달 운임 인하 전 한국교통연구원(KOTI) 조사에서도 두 열차의 운임 차이는 400원(6만200원, 5만9천800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좌석 등급을 높이면 순서가 뒤집히는 경우가 발생한다. 같은 구간 오전에는 KTX-청룡 우등실은 오전 6만5천100원인 반면 7개 역에 서는 KTX 특실은 7만8천100원으로 느린 열차가 1만3천원 더 비싸다. 다만 오후에는 청룡 우등실이 7만8천700원으로 올라 KTX 특실(7만8천100원)과의 차이가 일반실과 같은 600원으로 좁혀졌다.

열차마다 속도 차이도 크다. KOTI에 따르면 설계 최고속도는 시속 300㎞급이나 경부고속선 KTX의 표정속도(정차 시간을 포함한 평균 속도)는 시속 150~183㎞, 호남고속선은 140~180㎞에 그친다. 경부고속선에서는 정차역이 1곳 늘 때마다 표정속도가 평균 2.5㎞씩 떨어졌다.

요금 체계가 이렇게 굳은 것은 운임 결정권이 사실상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KTX 운임상한은 ㎞당 164.41원이고, 코레일은 그 안에서 163.31원을 적용해 왔다. 둘 다 2011년 이후 바뀌지 않았다. 고속철도 운임은 정부의 물가관리 대상이기도 하다. 반면 고속·시외버스는 3~4년마다 임률이 조정돼 우등직행 기준 ㎞당 59.78원(2010년)에서 101.42원(2023년)으로 올랐다.

여기에 지난달 코레일과 SRT 운영사 에스알(SR)이 통합하면서 KTX 운임은 기존 SRT 수준으로 평균 10% 내렸고, 할인은 2029년 9월까지 3년간 이어질 상황이다.

이처럼 운임이 묶인 사이 코레일의 재무 부담은 커지고 있다. KOTI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소비자물가는 1.24배, 고속철도 운행의 주요 원가인 산업용 전기요금은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46배 올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코레일 부채비율은 2028년 395.8%까지 오를 전망이다.

고속철도가 일반철도 적자를 메우는 구조도 요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코레일의 고속철도 원가보상률(총괄원가 대비 운송수입)은 2018년 115.1%, 2019년 128.4%로 원가를 웃돌았다. 같은 기간 일반철도는 52%대에 머물렀다. 코레일은 고속철도 수입의 34%를 선로사용료로 내고, 이 돈은 국가철도공단의 고속철도 건설 부채를 갚는 데 쓰인다.

◆빠른 열차는 할증, 한산한 시간은 할인

정부도 서비스와 요금을 차별화하는 방향은 이미 내놨다. 국토부의 중장기 철도운영전략에는 무정차·최소 정차 열차 같은 서비스 다양화와 함께 '시간대·속도에 따른 차등요금제' 도입이 담겼다. 그러나 열차가 빨라지고 서비스가 늘어나도 이를 값에 반영할 운임 체계는 아직 그대로다.

외국과 비교하면 국내 고속철도 요금은 낮은 편이다. KOTI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간당 요금을 비교한 결과 일본 신칸센(도쿄~오사카, 556㎞)은 1.31로 한국 KTX(서울~부산, 424㎞) 0.59의 2.2배였다. 신칸센의 이 구간 운임은 15만600~15만1천800원이다. 영국과 독일은 같은 노선에서도 예약 시기와 시간대에 따라 최고 요금이 최저 요금의 5배를 넘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빠른 열차에는 서비스 수준에 맞는 운임을 매기고, 빠른 이동이 필요 없는 승객에게는 싼 요금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운임수입이 서비스의 양적·질적 향상과 재투자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학 경일대 철도운전시스템학부 교수는 "기본 운임 수준은 고정해 두고, 요금을 구간별·시간대별·좌석 이용률별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요금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통합 이후 이용객과 운송수입, 운영 비용이 얼마나 변했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먼저 확인하고, 수요가 가격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분석한 뒤 요금 조정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며 서두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울진역을 지나는 KTX-이음. 매일신문DB
울진역을 지나는 KTX-이음. 매일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