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실을 복사하지 않는다. 실제 사건에서 출발해 빈칸을 상상력으로 채우기도 하고, 반대로 완전한 허구로 만든 이야기에 관객이 현실의 얼굴을 억지로 포개어 놓기도 한다.
문제는 그 경계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졌다. 2016년 '아수라'에는 가상의 정치인을 현실의 이재명 대통령과 연결하는 해석이 따라붙었고, 2017년 '택시운전사'는 실존 인물과 5·18이라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상당한 각색을 거쳤다.
세 영화 모두 현실과 만났지만, 만나는 방향이 서로 좀 달랐다.
◆'암살자(들)'…실제 역사에 가설을 더하면 어디까지 허용될까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서 출발한다.
유해진이 형사, 박해일이 신문사 사회부장, 이민호가 신입 기자를 맡아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지난 23일 개봉한 뒤 추석 연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7일까지 누적 관객 156만명을 넘겼지만, 흥행과 동시에 역사왜곡 논란도 커지고 있다.
영화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를 명확하게 하나로 지목하지 않는다. 다만 극중 인물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측이나 당시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가설로 제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일부 보수 성향 관객들은 이미 상당 부분 역사적 결론이 내려진 사건에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덧씌웠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허진호 감독은 "진실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큐멘터리와 책, 논문 등 자료를 살펴봤지만 자신이 사건의 실체를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었고,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영화는 이제 막 공개됐고 비판과 반론, 관객 평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사회적 논의의 결론은 아직 도출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질문은 남는다. 역사적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그대로 가져온 영화라면 "허구입니다"라는 전제만으로 어느 정도까지 새로운 가설을 제시할 수 있을까. 특히 그 가설이 사건의 책임 관계 자체를 바꿀 수 있다면 영화적 상상력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아수라'…현실을 영화에 갖다 붙인 경우
'암살자(들)'과 정반대 방향에서 논란이 생긴 작품도 있다.
김성수 감독의 2016년 영화 '아수라'다.
영화는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악덕 시장 박성배와 그의 뒤를 봐주는 경찰, 조직폭력배, 검찰 등이 얽히는 범죄극이다. 정우성이 형사 한도경, 황정민이 시장 박성배를 연기했다.
안남시는 애초 실제 도시가 아니다. 김성수 감독은 성남·안양 등 과거 수도권 변두리 도시의 이미지를 상정했다고 설명했고, 도시 이름 역시 안양·성남·안산·평택 등 여러 경기지역 도시 이름을 조합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 엔딩에도 등장인물과 지명, 사건은 모두 허구라는 취지의 고지가 붙는다.
그러나 2018년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성남지역 조직폭력배와 정치권의 유착 의혹을 다루자 온라인에서 "안남시는 성남시이고 박성배는 당시 성남시장을 지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모델로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됐다. '아수라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였다'는 식의 표현까지 유행했다.
하지만 이는 제작진이 확인한 설정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논란이 벌어진 뒤 영화 장면을 사후적으로 끌어다 맞춘 온라인 연관설, 즉 음모론에 가깝다. 이후에도 정치적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영화 속 대사와 등장인물, 소품까지 현실 정치와 연결하는 주장이 반복됐고, 그 과정에서 혐오성 정치 주장과 그럴듯한 음모론이 뒤섞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당시 직접 반박했다.
2018년 8월 7일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수라'를 언급했다. 당시 이재명 지사는 "픽션에 불과한 영화건만, 이걸 다큐라고 믿는 극렬분자들이 참으로 많다"며 "안남시는 성남시의 은유고, 박 시장은 이재명 지사를 묘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지나친 갖다 붙이기"라고 반박했다.
'아수라'가 던지는 시사점은 그래서 '암살자(들)'과 반대다. 영화가 현실을 바꿔 그린 게 아니라, 관객이 허구에 현실을 뒤늦게 덧입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택시운전사'…사실은 지키고 이야기는 바꿨다
장훈 감독의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에 들어가 계엄군의 진압 상황을 취재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운 한국인 운전기사 김사복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송강호가 김사복을 모티브로 한 택시기사 김만섭을, 토마스 크레취만이 힌츠페터를 연기했다.
영화가 지킨 역사적 큰 줄기는 명확하다. 힌츠페터가 광주에 들어가 5·18 현장을 촬영했고, 그 영상이 해외로 전달됐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 운전기사 김사복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도 이후 사진과 가족 증언 등을 통해 확인됐다.
그러나 세부 내용은 상당히 달랐다.
영화에서는 김만섭이 높은 택시비를 받으려 우연히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출발한다. 반면 실제 김사복은 외국 언론인들을 상대로 차량 서비스를 하며 외신기자들과 교류했고, 아들 김승필 씨는 아버지가 광주의 상황을 알고 계획적으로 들어갔다고 증언했다.
영화 속 김만섭에게 어린 딸이 있는 설정이나 극적인 차량 추격전 등도 영화적 각색에 해당한다. 실제 김사복의 아들은 당시 이미 20대였고, 영화 속 인물의 생활상과 성격 역시 실제 김사복을 그대로 복제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택시운전사'의 이런 각색이 5·18의 기본적인 역사적 성격이나 책임 관계 자체를 뒤집었다는 대규모 논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바로 이 지점이 앞선 두 영화와 비교할 만하다.
실화영화라고 해서 모든 대사와 장면까지 실제일 필요는 없다. 실제 인물을 합치거나 가족관계를 바꾸고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만 역사적 사건의 핵심 골격을 유지한 채 극적 재미를 위해 주변부를 각색하는 것과, 사건의 원인이나 책임 주체에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것은 관객이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를 수 있다.
◆현실→허구, 허구→현실, 현실+허구…세 영화의 다른 길
요약하면 이렇다.
'암살자(들)'은 실제 역사에서 출발해 확인되지 않은 영역에 영화적 가설을 더했고, 그 결과 역사왜곡 논란에 직면했다.
'아수라'는 처음부터 허구였지만 실제 정치 사건이 벌어진 뒤 관객들이 현실 인물과 사건을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택시운전사'는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하면서도 상당한 허구를 더했지만 사건의 역사적 큰 줄기는 유지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국 영화와 현실 사이에는 하나의 명확한 선이 있는 게 아닐 수 있다. 다만 관객에게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상상인가"를 구별할 단서가 충분한지, 그리고 창작된 부분이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의 핵심적인 의미까지 바꿔버리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영화가 현실을 빌릴 자유가 있다면, 관객에게는 영화와 현실을 구별해서 볼 책임도 함께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