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이호준] 레임덕

입력 2026-09-1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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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대한민국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보통 취임 1년 차에 국정 장악력과 지지율이 가장 높다. 2~3년 차엔 국정 과제와 역점 사업에 드라이브를 건다. 4년 차 이후 차기 대선 국면(局面)이 열리면 레임덕(lame duck) 조짐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레임덕 시점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힘이나 인기가 있으면 레임덕 기간은 짧다. 반대로 신뢰가 무너지면 빨리 오기도 한다. 그래도 대부분은 겪는다. 기간과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레임덕을 피해가는 권력은 드물다.

문제는 언제 오느냐다. 일반적이라면 말기에나 걱정할 일이다. 그런데 빨리 오면 얘기가 다르다. 대통령 본인도 국민도 낭패를 본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져서다. 뭔가 좀 해보려 해도 사람도, 힘도 슬슬 빠져나간다.

대표적인 징후(徵候)는 여권 분열과 인사들의 이탈이다. 반기를 드는 세력도 생기고 차기 권력을 찾아 줄을 서기 시작한다. 공무원들도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당연히 지시도 안 먹힌다. 보통 이 지점에서 무리수도 등장한다.

처음에는 표가 잘 안 난다. 일시적 현상으로 본다. 측근들이 그렇게 말하고 권력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다 결정적 트리거가 터지면 레임덕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정책 헛발질까지 겹치면 지지율은 급락한다.

60~70%대 지지율이 긍정·부정 평가가 역전되는 '데드크로스'를 지나 순식간에 30%대로 주저앉는다. 숫자보다 더 무서운 건 '대세(大勢)가 기울었다'는 인식이다. 야권 인사도, 공무원도 이 인식에 따라 움직인다.

위기를 돌파해 보겠다며 꺼내 드는 카드는 대개 개각이다. 그런데 이미 불안에 사로잡힌 권력은 내 사람으로 채우려는 무리수를 둔다. 함량 미달, 검증 부실 후보 지명 논란과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더 치명적인 독(毒)이 된다.

임기 초 순조롭고 인기가 좋은 경우가 더 위험하다. 자아도취에다 국민의 지지와 신뢰가 절대적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쉬워서다. 이를 기회로 보고 벼르던 난제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다. 그 과정에서 국정은 혼란에 빠지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났다. 임기의 딱 4분의 1이다. 집권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지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벌써 여러 징후가 겹친다. 여권 분열이 분출된 민주당 전당대회가 그랬다. 신약 임상 청탁 의혹에 휩싸인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의원 겸직 논란 끝에 물러난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 내각 인사 논란도 그렇다.

대법관 제청(提請)을 둘러싼 사법부와의 갈등, 대통령 관련 사건 공소 취소 논란도 '사법 리스크 방탄용' 아니냐는 의심을 키웠다. 연임 개헌 논란에도 '연임 안 한다'고 확언하지 않는다. 그 사이 60%대 지지율은 30%대로 급락했다. 최근 발표된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여론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넉 달 새 26%포인트나 하락했고, 20대 경우 10%대까지 추락했다.

이제라도 속도를 늦추려면 원칙과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을 이기려 해선 안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게 내각 인사 논란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대법관 제청 관련 압력 행사 중단 등 사법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조작 기소 및 공소 취소 시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연임 개헌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번 주 거론되는 기자회견이 기회다. 레임덕은 시간표대로 오지 않는다. 지금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