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핵심 5인'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사망…5·18 단체 "끝내 사죄 없어"

입력 2026-09-14 06:54:18 수정 2026-09-14 0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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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와 육사 11기…신군부 핵심 인사 모두 사망
5·18 단체 "사죄 없이 떠나 유감…진상 끝까지 규명할 것"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오전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 전 장관의 빈소. 연합뉴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오전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 전 장관의 빈소. 연합뉴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94세로 사망했다. 정 전 장관은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 전 장관은 전날 94세의 나이로 숨졌다. 빈소는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932년생인 정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분류됐다.

정 전 장관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고, 반란 다음 날 육군 특전사령관에 임명됐다.

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80년 5월에는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 관여했다. 항쟁 기간 그는 적어도 네 차례 광주를 방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장관은 그동안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다른 작전 지휘계통에 배속돼 있었으며 자신의 광주 방문도 예하부대에 대한 행정·군수 지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유혈 진압 책임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5·18 진압작전이 '신군부(전두환 등)→특전사령관→공수여단장'으로 이어지는 비공식 지휘체계를 통해 이뤄졌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지원한 데 대한 정 전 장관의 책임도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인정됐다.

민주화 이후 정 전 장관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진압 등에 가담한 혐의로 1996년 기소됐다. 당시 적용된 혐의는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반란중요임무종사, 특정범죄가중 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방조) 등이었다.

그는 이듬해인 1997년 징역 7년을 확정받았다.

신군부 핵심 인사였던 정 전 장관은 5공화국 시절 군과 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다.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뒤 대장으로 예편했고,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에는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잇따라 맡았다.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8년 민주정의당(민정당) 소속으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서구갑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5공 청산 여론이 거세지면서 이듬해 12월 의원직을 내려놨다.

이후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같은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치권을 떠난 뒤에는 육사발전기금 이사장과 특전사 전우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그의 이름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정 전 장관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으나 논란이 확산하자 5시간 만에 이를 철회했다.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 전 국방장관이 검찰의 조사를 받기 위해 1996년 1월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 연합뉴스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 전 국방장관이 검찰의 조사를 받기 위해 1996년 1월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 전 장관의 사망 소식에 5·18 관련 단체들은 사죄와 진상규명 협조 없이 세상을 떠났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5·18 책임자이자 옛 전남도청 진입 작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 전 사령관이 사죄 없이 떠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성 있는 참회를 수십 년간 기다린 오월 영령, 유가족, 부상자들의 가슴에는 또 한 번 상처가 남게 됐다"며 "신군부 인사들이 외면한 책임을 기록하기 위해 5·18 진상을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양재혁 5·18 유족회 회장도 "살아있을 때 양심선언이나 고백을 했다면 5·18의 진실을 밝히고 용서받을 기회도 있었을 것"이라며 "46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정 전 사령관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당시의 잘못까지 묻힐 수는 없다"며 "모든 행적에 대한 책임과 진실은 역사에 기록돼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극정 5·18 부상자회 회장은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면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는 남겼어야 했다"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사죄도 참회도 없이 떠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당시 상황을 아는 신군부 인사 중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라도 사죄해야 한다"며 "그것이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촉구했다.

윤남식 5·18 공로자회 회장은 "5·18의 진실을 모두 밝혔으면 좋았겠지만, 결국 사과 한마디 받지 못했다"며 "신군부 핵심 5인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진실을 밝힐 기회도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