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에 버금 가게 유명한 청와대 인물이 한 명 있다.
'현지 누나'라는 애칭 아닌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다.
마치 베일 또는 흑막에 가려진 인물처럼 언론에서 보도되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인물'은 아니다.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회의 등에 배석하며 언론 카메라에 여러 차례 포착됐다. 그러나 기자들 앞에서 질문을 받거나 국회에 출석해 자신의 역할과 제기된 의혹을 직접 설명하는, 이른바 '말하는 공개석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도 그랬다. 김현지 실장에 대한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김현지 실장에게 국회가 출석을 결정할 경우 나갈 수 있도록 대통령실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출석은 불발됐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결사적으로 막으면서 이재명 대통령에겐 '나는 출석하라고 했는데'라는 좋은 핑계가 부여됐다.
◆사진엔 나오는데 목소리는 없다…'김현지 리스크' 1년째 지속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김현지 실장을 둘러싼 정치적 의문을 해소하기는커녕 반복 재생시키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다양한 정치적 이슈가 생성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김현지 실장을 둘러싼 이른바 '만사현통'(모든 것은 김현지를 통한다) 논란은 좀처럼 소멸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이어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선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야권은 다시 김현지 실장의 인사 개입 여부를 거론하고 있다. 만사현통은 어디까지나 야권에서 나온 정치적 공격 프레임이지만, 여권이 이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채 1년 가까이 반복해서 소환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사법리스크와 비교하면 김현지 리스크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법리스크는 재판과 법률 판단이라는 외부 일정에 묶여 있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만으로 없애기 어렵다. 반면 김현지 리스크는 상당 부분 인사와 소통의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해소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크다.
◆'만사현통' 걷어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직접 나와 설명하면 된다
가장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은 김현지 실장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자신의 실제 업무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인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까지 의견을 전달하는지 등을 기자회견이나 국회 출석을 통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 결과 야권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사실이 아닌 부분이 확인된다면 '만사현통'이라는 표현은 힘을 잃을 수 있다. 오히려 야권의 공세가 외모나 사생활, 막연한 '실세론' 같은 흠집내기로 흐른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직접 나와 설명했는데도 정치공세만 한다"고 반격할 기회도 생긴다. 지금처럼 이재명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마당에 정국 돌파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김현지 실장이 공개적으로 설명하기 곤란할 만큼 정치적 부담이 큰 인물이라고 판단한다면 인사 조치 역시 선택지다.
지난 9월 1일 김용범 정책실장이 물러난 사례가 가까이에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혼선과 부동산 정책 등을 둘러싼 책임론이 거론되던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김용범 실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후 논쟁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김용범 개인에서 후임 정책라인과 정책 변화 여부로 옮겨갔다.
◆YS는 자신부터 공개, 朴정부 '문고리'는 숨길수록 커져…레이건은 인정 뒤 반등
한국 정치사에서도 '드러냄' 자체를 개혁의 동력으로 바꾼 사례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직후 자신의 재산부터 국민 앞에 공개했다. 이후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가 이어졌고 공직자윤리법 개정과 재산공개 제도화로 확장됐다. 공개를 통한 리스크 해소 행위를 제도화까지 연결시킨 선례다.
문제가 드러난 장관과 고위직은 취임 초부터 잇따라 교체했다. 군 사조직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까지 이어진 당시 개혁 드라이브 속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때 90%에 육박했다.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의심받기 전에 대통령 자신과 권력기관 내부를 먼저 열어젖힌 게 정치적 자산이 된 셈이다.
반대 사례는 박근혜 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다. 이들은 외부 접촉을 극도로 자제했지만 오히려 폐쇄적 국정운영과 비선 권력 의혹의 상징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이들을 두고 "무슨 권력자냐" "일개 비서관"이라는 취지로 적극 방어했지만 문고리 권력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야당은 국회 출석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집권 3년차에도 이들을 둘러싼 논쟁은 그대로였다.
집권 2년차에도 여전히 김현지 실장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현재 이재명 정부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숨는다고 권력이 작아 보이는 게 아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큰 권력으로 상상되는 것이 정치의 역설이다.
해외에도 공개를 위기 탈출구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1986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자금이 니카라과 반군 지원에 사용된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처음엔 '무기와 인질을 교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는데, 1987년 3월 대국민 연설에서는 사실과 증거가 자신의 기존 인식과 다르다며 결과적으로 무기와 인질을 거래한 일이 됐다고 인정했다. 이어 "실수였다"며 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고 인사와 국가안보 의사결정 시스템을 손보겠다고 밝혔다.
갤럽에 따르면 이 연설 직전 40%까지 떨어졌던 레이건의 국정 지지율은 '실수 인정' 직후 46%로 반등했다. 스캔들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부인에서 인정과 수습으로 태도를 전환한 게 지지율 추락을 끊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용혜인 청문회 또는 10월 국감이 오히려 기회?…중요한 건 공개+설명과 책임
중요한 건 단순한 공개 여부만이 아니다. 공개를 통해 무엇을 설명하고 어떤 책임을 지느냐다.
김현지 실장이 스스로 아무 문제가 없는 공직자라면 오히려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국민 앞에서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야권이 던진 의혹에 답하면 된다.
마침 국민의힘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현지 실장을 비롯한 28명을 증인으로 요구했다. 여당이 대부분의 증인 채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어 실제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김현지 실장에겐 공개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는 무대로 삼을 수 있다. 아울러 코너에 몰린 용혜인 후보자에게도 도움이 될지도.
무산 시 올해 10월 6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된, 즉 한 달 뒤 진행되는 국정감사가 같은 맥락의 공개 검증 무대가 될 수 있다. 일종의 '역공' 스탠스를 여당이 얻을 수도 있다.
반대로 대통령에게 계속 정치적 부담을 줄 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인사를 통해 선이 그어지며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는 물론 김현지 실장 본인도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정치적으로 가장 불리한 선택은 지금처럼 '사진에는 나오는데 목소리는 없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만사현통' 같은 표현은 사라지지 않고 정치권과 여론의 발끝에 계속 차여 굴러다닐 공간만 넓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