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이호준] 이승만과 이재명

입력 2026-09-04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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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둬 왔다. 성남시장이던 2017년 19대 대선 경선 당시 현충원을 찾았으나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여서 고개를 숙일 수 없다'며 이 전 대통령 묘역 참배(參拜)를 하지 않았다. 지난 8월 15일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정부가 제작해 공개한 기념 영상에도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우당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 6명이 등장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정부 수립 후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의 모습은 없었다. 이 대통령의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분명한 듯했다.

그런 이 대통령에게 최근 이승만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提請)한 대법관 후보자를 거부하면서다.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 후 대면 제청하는 관례를 깨고 서면 제청했다는 이유에서다. 사법부의 임명 제청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1957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이 법관회의가 제청한 김동현 전 대법관의 대법원장 임명을 거부한 이후 처음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퇴임으로 법관회의가 제청한 후임을 거부했다. 자신에게 비판적이던 사법부 라인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19 혁명 직후 헌법은 대법원장·대법관 선거제를 도입했고, 이어 1962년 헌법은 아예 '제청이 있으면 대통령은 이를 임명하여야 한다'며 의무 조항으로 못 박았다. 거부권 남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헌정사의 뼈아픈 반성이었다. 그 반성은 69년 만에 이승만을 부정해 온 대통령의 손에서 다시 깨졌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공과(功過) 중 '과(過)'에 해당하는 헌정사적 오류를 반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역사는 말이나 명분이 아니라 행적(行跡)으로 기록된다. 이 전 대통령의 과오로 평가되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답습한다면 '임명 제청을 거부한 대통령, 이승만·이재명'이라는 꼬리표가 달릴 수밖에 없다. 아마 앞으로 내내 함께 붙어 다닐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잘 봉합하면 역사에 달리 기록될 수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존중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을 지키면 된다. 임명 제청 논란은 조 대법원장의 부친상으로 중단된 상태다. 어쩌면 이번 상(喪)이 그 기회를 준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