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들의 평범하지 않은 도전
히말라야 타르푸출리 원정대 2차 훈련
"허억, 헉." 거친 숨소리가 퍼진다. 다른 쪽에선 기합 소리도 들려온다. 고산등반용 이중화를 신고 로프에 매달려 등강기(Ascender, 고정 로프에 장착해 등반을 돕는 장비)에 의지한 채 팔뚝이 터져라 오르고 또 오른다. 헬멧 아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대구 팔공산 수태골을 30분 정도 오르면 나타나는 거대한 수직 암벽 '수태골 슬랩'은 지난 수십 년간 북적이던 산악인들의 훈련장이었다. 누군가는 암벽등반을, 또 다른 누군가는 고산등반의 꿈을 이곳에서 키웠다.
지난달 22일과 23일 수태골 슬랩에서 히말라야 고산등반을 위한 훈련이 펼쳐졌다. 박정헌(55) 대장이 이끄는 '2026년 타르푸출리 원정대'의 2차 훈련이다. 이들은 오는 11월 24일부터 12월 9일까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군에 속한 타르푸출리(5663m)에 도전한다. 이 원정대엔 기자도 포함됐다.
◆전화 한 통으로 꾸려진 원정대
"선배 오랜만입니다. 혹시 히말라야 등반을 계획하고 있다면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번 원정은 기자가 박정헌 대장에게 건넨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 "어디 생각해둔 곳이 있냐"는 박 대장의 물음에 "선배가 계획한 곳이 있다면 맞추겠다. 한 곳을 꼽자면 선배가 2022년 다녀온 타르푸출리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곧바로 등반 대상지가 정해졌다.
20대 시절 암벽등반을 처음 배울 때부터 히말라야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30대 중반 땐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하며 산과는 완전히 멀어졌다.
2023년 초 잊혔다고 생각했던 히말라야 등반에 대한 갈망이 꿈틀댔다. 운동을 시작했고 산을 조금씩 다니기 시작했다. 산행 횟수를 늘려가면서 가능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임자체(6198m)와 로부제 동봉(6100m) 등을 등반할 계획을 세웠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등반 시작점까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네팔에 있는 상업 등반 에이전시 측이 등반로에 고정 로프를 설치해두고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이들 에이전시를 활용해 현지 등반 가이드와 트레킹 가이드, 포터를 고용하면 한국에서 팀을 꾸리지 않고 혼자서도 등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목표 시점은 2024년 12월이었다. 출발을 한 달쯤 앞두고 직장 내 부서가 바뀌었다. 바뀐 자리가 길게 비울 수 없는 보직인 탓에 히말라야 등반 계획은 무산됐다.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준비만 돼 있다면 언제든 갈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부서가 한 번 더 바뀌었다. 이대로 가다간 '나이만 먹고 히말라야의 눈은 다 녹아 없어지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다시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국장과 상의를 했고 "다녀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박 대장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전화 통화 일주일 뒤 박 대장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타르푸출리 원정대원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뒤 박 대장으로부터 대원 모집이 모두 마무리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암벽등반의 길로 이끌어준 수태골 슬랩
1차 훈련은 4주 전 경남 사천 와룡산 상사바위에서 진행했다. 상사바위는 폭 180m, 높이 100m로 수태골 슬랩보다 큰 규모의 암벽이다. 수태골 슬랩처럼 경남 지역 산악인들은 이곳에서 '고산등반의 꿈'을 키웠다. 당시 대원들은 이곳에서 고정로프에 등강기를 장착해 암벽을 오르는, 이른바 '주마링'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익혔다. 타르푸출리 정상부 능선 아래 해발 5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있는 30m 수직 암벽을 오르기 위한 훈련이다. 암벽등반을 꾸준히 하는 이들이라도 고산등반이나 구조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등강기를 다룰 일은 흔하지 않다.
훈련 전날인 21일 오후 박 대장과 만나 2차 훈련지인 수태골 슬랩을 찾았다. 다음 날 훈련을 위해 미리 로프를 설치해둘 생각에서였다.
수태골 들머리에서 30분쯤 오르자 거대한 암벽이 나타났다. 20여 년 만에 수태골 슬랩을 마주하자 옛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늦은 가을 아버지와 팔공산 등산을 하다 이곳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눈앞에서 직접 암벽등반하는 이들을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돌이켜보면 암벽등반가라고 하기엔 뭔가 거창해 아닌 것 같고,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정도의 마음을 품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 대장이 등반을 마친 뒤 등반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슬랩 등반은 낯설었다. 슬랩은 평평하고 매끈한 넓은 바위를 말하는데 잡을 것 없는 매끈한 바위면은 식은땀이 나게 하고 다리가 떨리게 만들었다. '상체를 세워 발바닥의 마찰력을 크게 하자' '암벽화를 믿고 자신감을 갖자'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자세를 바로잡으니 등반은 훨씬 수월해졌다.
훈련 날인 다음 날부터 이틀간은 밑창이 휘어지지 않는 고산등반용 이중화를 신고 주마링 훈련을 했다. 처음엔 다들 어려워하는 모습이었지만 훈련을 반복할수록 익숙해져 갔다. 1차 훈련에 참석하지 못해 주마링이 처음이던 남인우(48) 대원도 예상보다 빨리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이번 훈련의 또 다른 목표는 등강기 체결과 해체에 능숙해지는 것이었다. 로프에 장착하는 등강기는 등반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필수적인 도구다. 고산등반에선 로프에 걸린 등강기를 빼 위쪽 다른 로프에 걸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지만, 자칫 실수라도 하면 그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날 대원들은 이 두 가지 목표에 익숙해지기 위해 등반과 하강을 '무한' 반복했다.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보통 사람들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이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장 큰 오해는 '특별한 사람' '별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박 대장과 같은 소수 유명 등산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힘들게 올라갔다 내려올 산을 목숨을 걸고서 오르려 한다'는 정도쯤이다.
이승률(55·서울) 대원은 박 대장과 동년배로 정보보안 전문가다.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등산을 해왔다. 20대 때부터 히말라야 등반을 꿈꿨고 2018년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왔다. 지난해 처음으로 장비를 사용해 오르는 전문적인 등반을 접한 뒤 오래 품어온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원정대에 합류했다고 한다. 원정 등반에 앞서 거의 매일 계단 오르내리기를 하고 주말엔 산행을 하고 있다.
남인우(48·부산) 대원은 세무사다. 자신의 의지로 산을 다닌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건강도 좋아졌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느낌을 받으며 산의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됐다. '100대 명산을 다 올라보자'는 목표를 세웠고, 산을 하나씩 오르면서 좀 더 높은 산에 대한 꿈이 생겨났다.
2023년부터는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을 배웠다. 해외 등반으로는 일본 북알프스를 올랐고 지난 7월엔 등산학교 동기인 안동오 대원 등과 유럽 알프스를 다녀왔다. 몽블랑을 목표로 한 원정이었는데 이상기후로 빙하가 녹으며 등산로가 위험해진 탓에 등정을 포기했다. 대신 묀히와 브라이트호른 등을 올랐다.
알프스 원정 중 안동오 대원이 박 대장님의 SNS에 올라온 대원 모집 공고를 본 뒤 함께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합류하게 됐다. 산행과 러닝, 웨이트 운동을 하며 등반을 준비하고 있다.
안동오(41·수원) 대원은 기아자동차 엔지니어다. 어린 시절엔 등산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따라서 산행을 자주 했다. 백패킹 등 야외활동을 좋아하다 보니 등산을 좋아하게 됐고 100대 명산을 모두 오른 뒤 '뭘 해볼까' 고민하다 등산학교에 등록해 클라이밍을 배웠다. 이번 원정 등반을 위해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주말엔 자전거를 타며 훈련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마 한 명쯤 있을 법한, 히말라야를 꿈꾸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이다.
▶타르푸출리(5663m)=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군에 있다. 해발고도가 비교적 낮은 편인데도 조금은 까다로운 등반 대상지로 꼽힌다. 등반의 성격 때문이다. 정상까지 가는 길에 암벽과 크레바스, 300m가 넘는 눈으로 덮인 급경사 능선을 통과해야 하는 데다, 기상 변화가 매우 빨라 폭설·눈사태의 위험이 있다는 지형적 특성이 있다. 상업 등반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느 봉우리와 달리 이곳에선 캠프를 직접 운영해야 하고 팀이 직접 로프를 설치해야 한다. 여기에다 한 해 한두 팀 정도가 도전하기에 타 원정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등반을 까다롭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