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비춰 본 한국] 사회는 나에게… "놀 때도 경쟁했다"

입력 2026-09-04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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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김성열 전 대구문화재단 사무처장

캐나다에서 자동차를 살 때 찾는 사양이 없으면 같은 판매상의 다른 매장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그 판매상이 보유한 차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국은 다르다. 매장에 샘플 몇 대만 있어도 원하는 사양의 차를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다.

차이는 제조업이다. 캐나다의 자동차와 옷, 가전은 상당수가 수입품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이 훨씬 크다. 인구도 많지 않고 교통의 요지도 아닌 분단국가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공장이 들어섰을까.

품질은 말할 것도 없다. 이만한 제조업을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캐나다에 비춰 보다 보면 이런 부분은 정말 우리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어느 날 하나의 가설을 품었다. 혹시 이 모든 것이 경쟁 때문이 아닐까.

캐나다에서 만난 많은 사람은 일이 끝나면 쉬고 놀았다. 돌아보니 우리는 놀 때조차 경쟁하는 데 익숙했다. 찻잔 앞에서도 ▷자녀 ▷성공 ▷주식 ▷땅 판 이야기가 오갔다. 등산복이 유행하면 산에 가지 않아도 샀고, 골프가 유행하면 나도 쳐야 했다. 그랜저 정도는 타야 하고, 아파트는 있어야 했다. 졸업장만으로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대졸'이라는 자격을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이 목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과시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차이는 과시의 유무가 아니다. 사회의 다수가 "그건 좋은 삶이 아니다"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그래도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가의 차이다.

2021년 퓨리서치가 17개 선진국에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14개국에서는 가족이 가장 많이 언급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물질적 안정이 첫자리에 올랐다. 일을 언급한 응답은 6%로 가장 낮았다. 한 번의 조사로 한 사회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좋은 삶의 조건으로 여겨왔는지는 진지하게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의 삶의 만족과 주관적 행복으로 눈을 돌려 보자. 2010년 '삶의 만족'은 OECD 26개국 중 가장 낮았다. 2016년 주관적 행복지수도 비교 대상 22개국 중 가장 낮았고, 2021년에도 같은 자리였다. 올해 발표된 2026년 조사에서는 주관적 행복지수가 22개국 중 17위로 올랐지만, 세부 지표인 '삶의 만족'은 여전히 가장 낮았다. 오랜 조사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연구의 분석에는 부모가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아이의 삶의 만족도를 크게 가른 것은 부모와의 관계였다. 같은 성적이어도 부모와 사이가 좋은 아이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경쟁 자체 못지않게, 그 안에서 부모가 아이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를 경쟁으로 밀어 넣은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강요하지 않았고 다 잘 되라고 한 일이라고. 그러나 경쟁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아이가 그 안에서 지쳐가는 모습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였다면, 부모인 우리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인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갉아먹히는 것은 감당하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라 하자. 그러면 묻자.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학교와 직장은 물론, 차를 마시고 운동하고 쇼핑하고 캠핑할 때도 경쟁하며 살기를 바라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치열한 경쟁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쟁이 학교와 직장을 넘어 휴식과 소비, 인간관계까지 지배하는 동안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오랫동안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경쟁이 그 모든 결과를 낳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성공의 동력이라 여겨온 경쟁이 아이들의 삶까지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일은 부모의 몫이다.

지금 나는 아이에게 성취를 향해 노력하는 힘과 함께, 사람의 가치까지 경쟁의 결과로 매기는 삶을 물려주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