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양승진] 과거를 함부로 평가하지 맙시다

입력 2026-08-30 13:57:28 수정 2026-08-30 14: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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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잣대가 아닌 당대의 사실로 바라봐야 한다

각시탈. 유튜브 캡쳐.
각시탈. 유튜브 캡쳐.
양승진 사회2부 기자
양승진 사회2부 기자

경북 경주에 사는 김아무개는 삼국시대 신라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너무 먼 과거 이야기라면, 조선시대 선비 혹은 일제강점기를 사는 민중과의 대화는 가능할까. 사실 사극 영화·드라마를 볼 때마다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수도 '서울'은 '서라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불가능하겠지만 과거 한반도 어딘가에서 내가 "서울이 어디에요?"라고 한다면 콕 집어 알려줄 이가 있을까.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언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다. 또 사라질 수도, 새로 생겨날 수도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광복절 무렵 피드에 드라마 '각시탈'이 떴다. '곤니찌와'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 순사가 현대 문법·어법에 완벽한 한국어를 구현한다. 배우 섭외, 제작비 등 현실적 선택일 수는 있으나 역사물은 '고증'이 기본이다. 당시 일제는 식민 지배를 강화하면서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규정하고 사용을 강요했다. 이대로라면, 내 광복절 손님은 '역사 왜곡'이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한국 사회는 어느 순간 창작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K콘텐츠 세계화는 별개다. 각시탈 주인공만 해도 그렇다. 위악자(僞惡者)의 삶을 선택한 그가, 밤마다 조선 민중의 영웅이 되는 그를, 오늘날 기준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일까.

얼굴도 본 적 없는 조상을 이야기했다가 매국노 후손으로 낙인찍힌 어느 배우도 있다. 조상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조리돌림당하고 있다. 늘 그렇듯, 이럴 땐 집단지성이 발휘된다. 연좌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식민지 시기를 살아간 어느 지식인이 조상이라는 이유로 멸문지화(滅門之禍)라도 당해야 속이 후련한가 싶다.

일부에선 마치 기회를 포착한 듯 움직인다. 친일재조사위원회 가동과 재산 환수 운운한다. 조상의 업보(業報)가 그만큼 큰 책임이라면, 일부 정치인들이 받는 '전과' '확정 판결'에 대해선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역사는 정쟁(政爭)의 도구가 아니다. 때로는 역사의 재평가가 필요하긴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공훈 격상 노력은 다른 차원이다. 처음 서훈이 제정됐을 시기보다 더 풍부해진 사료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하자는 취지다. 석주의 고향인 안동의 민간단체, 경북호국보훈재단 등 모처럼 민·관이 힘을 모으는 점도 고무적이다. 2천500명 이상의 서명이 이뤄졌다. 유림들의 청원도 150년 만에 부활했다.

역사는 소유하려는 순간, 또 다른 왜곡이 된다. 전쟁범죄의 과오를 덮으려는 일본, 고구려·발해를 자기네 역사라 주장하는 중국의 행태가 그렇다.

친일파를 비판하지 말자는 건 절대 아니다.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건 중요하다. 책임질 게 있다면 하되, 연좌나 마녀사냥 같은 전근대적 수단은 지양하자는 의미다. 성난 대중에 편승해 재산 환수를 외치는 무지성은 근절돼야 마땅하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다.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언어, 가치관, 신념 자체가 오늘날과 다르다. 그래서 역사로 과거를 심판해선 안 된다. 대신,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 객관적 사실대로 평가하면 된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 더 나을 오늘이, 내일이 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전 재산을 바쳐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공(功)을 세운 석주 선생이 합당한 평가를 받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