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 개입에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美 장기채 금리
위험자산 투자에 부담 가중…워시 잭슨홀 연설 주목
고금리 지속 시 성장주보다 주주환원·현금 탄탄한 종목이 대안
코스피가 7000대를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8월 내내 이 선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되밀렸습니다. 지난 24일 삼성전자가 주주환원 실망 매물에 8% 넘게 급락하며 지수가 6700대 아래로 밀렸고 전날엔 엔비디아 호실적에 7000대 돌파를 넘봤다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지수를 7000대 앞에서 주춤거리게 만든 건 바로 국채금리입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장기 국채금리가 치솟자 그 충격이 국내 증시로 옮겨왔고, 한은마저 8월 27일 기준금리를 연 3.0%로 두 달 연속 올리며 국내 금리 부담까지 더해졌습니다. 국채금리가 왜 내 주식 계좌까지 흔드는 걸까요?
◆19년 만에 5% 넘긴 美 장기채 금리…증시 불안↑
지난 8월 18일(현지시각)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 중 연 5.33%까지 올랐습니다. 2007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물 금리도 한때 4.7%를 웃돌아 연초 4% 초반에서 크게 뛰었고, 최근에도 4.6%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후 미 재무부가 장기 국채를 되사들이는 '바이백' 확대로 시장 안정에 나서면서 지난 27일에는 30년물이 5.2%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습니다. 미국만의 일도 아닙니다. 일본 10년물은 약 30년 만에, 독일 30년물은 15년 만에, 프랑스 30년물은 18년 만에 각각 최고 수준으로 올라 주요국 장기채 시장이 동시에 흔들렸습니다.
채권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전 세계가 장기 국채를 꺼리는 데는 몇가지 요인이 겹쳐 있습니다.
우선 국채 공급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각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려 국채를 계속 찍어내고 있어서입니다. 미국 국가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40조달러(약 5경5000조원)를 넘어섰고 올해 연방정부가 부담할 이자만 1조달러를 웃돌 전망입니다. 물량이 넘치면 값이 떨어지고 그만큼 금리는 올라갑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가세했습니다. 아마존·알파벳·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들이 AI 인프라 자금을 마련하려 회사채를 대거 발행하고 있는데, 이들 초우량 기업의 회사채는 미 국채만큼 안전하면서 금리는 1%포인트 이상 높습니다. 국채로 향하던 자금이 회사채로 분산되니 국채 금리는 더 오릅니다. 일본에서는 자국 금리가 오르면서 그동안 미국 국채를 사주던 일본 자금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국채금리 상승이 왜 주가를 끌어내릴까요? 핵심은 '할인율'입니다. 주식의 가치는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매기는데 이때 미래의 돈을 깎는 비율이 할인율입니다. 금리가 오르면 할인율이 높아지고, 먼 미래의 이익일수록 현재가치가 더 많이 깎입니다.
그래서 당장의 이익보다 먼 미래의 성장을 기대하고 사는 고평가 성장주가 특히 취약합니다. 국내에서는 제약바이오·2차전지처럼 이익 실현 시점이 늦은 기업 비중이 높은 코스닥이 구조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안전자산인 국채가 연 5% 안팎의 수익을 준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주식에 머물 이유도 줄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합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리 상승의 특징은 인플레이션보다 장기 보유 위험을 뜻하는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는 주가수익비율(PER)에 부정적인 만큼 기업이익의 장기 성장에 대한 기대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관건은 이 고금리가 얼마나 오래갈지입니다. 미 재무부 개입에도 국제유가가 다시 90달러에 육박한 데다 재정적자와 수급 부담이 그대로여서 추세 전환으로 보긴 이르다는 진단이 많습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미 재무부의 개입은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며 "장기물 금리의 변동성은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금리의 향방이 증시를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의 분수령은 이날 밤(국내 시각) 예정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잭슨홀 첫 기조연설입니다. 취임 후 줄곧 말을 아껴온 워시 의장이 물가와 금리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지에 시장의 시선이 쏠려 있습니다. 전날 나온 7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예상보다 높았던 데다 연준 인사들이 잇따라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어 워시 의장이 장기금리 상승을 억제하려 매파적 전망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임계 수준을 넘어서면 할인율 관점에서 주식시장에 밸류에이션 압박을 준다"며 "다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방향성이 나오는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인프라 투자를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실적 성장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리 상승 우려까지 완화한다면 증시의 추가 안도랠리가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고금리 시대, 주목할 섹터는?
금리가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면 증시에선 무엇을 봐야 할까요? 원칙적으로 금리가 오를 때는 빚을 내 외형을 키우는 성장주보다 벌어들인 돈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에게 돌려주는 기업이 유리합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금리가 3.5%에서 4.9%까지 올랐던 2023년 3~10월, S&P500에서 자기자본이익률(ROE) 상승 폭 상위 3개 업종은 평균 10.4% 오른 반면 하위 3개 업종은 4.7% 하락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잉여현금흐름(FCF)이 넉넉하고 주주환원 여력이 큰 기아·LG·현대글로비스·GS 등이 관심주로 꼽힙니다.
금리 상승의 직접 수혜주도 있습니다. 보험사는 나중에 돌려줄 보험금(부채)의 현재가치가 금리 상승으로 줄어 재무건전성이 개선되고 은행은 순이자마진(NIM)이 확대됩니다. 이달 들어 지난 27일까지 KRX보험지수가 12% 넘게 오른 배경입니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3고' 환경에서 방어력이 좋은 음식료·화장품 등 필수소비재도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다만 금리가 고점을 통과한 뒤에는 전략이 달라집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계속 오르는 구간에서는 주주환원으로 재무레버리지를 높이는 기업이 유리하지만 금리 고점 이후에는 수익성 개선으로 ROE를 높이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