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인생의 등불이자 삶의 자양분"
지난 20일 오후 대구 수성구 용학도서관. 이날 이곳에선 도서관 문화강좌 600회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주인공은 전진문(79) 전 대구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그는 지난 2013년 4월 '전진문 교수와 만나는 책 세상'이란 이름의 독서 강좌를 개설해 매주 한 차례씩 시민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책 1권 두께를 평균 2㎝라고 보자면 지난 13년 동안 함께 읽은 책은 높이 12m에 이르는 분량이다. 강좌 개설 초기부터 강의를 듣고 있다는 한 수강생은 이 강좌에 대해 "인생의 등불이자 길잡이가 돼준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전 교수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전 전 교수는 "책이 인생을 바꾸긴 힘들겠지만, 최소한 행동과 사고의 계기는 마련해 준다"며 "그런 점에서 삶의 자양분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대구독서포럼 창립, 용학도서관 강의 등 20년 넘게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봤다. 선친께서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시인이셨던 덕분에 집에 책이 많았다.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방 한 곳은 책으로 가득했다. 학창시절 그곳에서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다.
2003년 8월, 20여년 몸담았던 대구가톨릭대를 퇴직하고 이듬해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란 책을 낸 게 시발점이 됐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인 경주 최부자 집안의 부의 비결과 숨겨진 노하우를 경영학적 시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6훈(六訓)'으로 요약되는 최부자 가문의 철학 등을 분석한 사례가 거의 없었던 터라 책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전국에서 강의 요청도 많이 들어왔다.
2005년 서울 '경영자독서모임'의 요청으로 강연을 하며 이 단체를 알게 됐다. 대구에도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곧바로 모임을 결성했다. 대구독서포럼의 전신인 대구경영자독서모임이다. 지금은 한발 물러서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저자가 직접 강단에 선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대구경영자독서모임 때부터 시작한 '저자와의 만남'은 최근 400회를 넘어섰다.
-용학도서관 강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13년 초 용학도서관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게 됐다. 당시 도서관장께서 강의를 듣고는 독서 강좌 개설을 제안했다. 다양한 책을 여럿이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엔 20명 정도의 소규모 강좌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80명 규모로 늘었다.
평일 낮 시간에 강좌가 열리다보니 수강생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게다가 수강생 중엔 평소 알고 지내던 퇴직한 선후배 교수도 있고, 교직에 계셨던 분들, 독서량이 상당한 분들이 많다. 부끄러운 수업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수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매년 분기별로 주 1회 2시간씩 총 12회 강의를 한다. 분기별 수강생을 모집할 때 강의 주제가 되는 책 12권 목록을 미리 알려줘서 수강생들이 미리 읽어보도록 한다.
강의는 책 내용을 요약해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내용을 덧붙이는데, 책의 내용과 관련해 알아두면 좋을만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테면 반론에 해당하는 다른 이들의 주장 같은 것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조건 그 책에 몰입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책을 읽어나가면 사고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최근엔 일부 수강생들이 제가 동양고전 연구모임 활동을 하고 있는 걸 알았는지 한문 고전을 배워보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서, 본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10분 정도 함께 다루고 있다. 처음엔 천자문과 사자성어를 공부했고, 지금은 명심보감을 함께 읽고 있다.
-독서량이 상당할 것 같다.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매월 6권 정도, 1년에 70~80권 정도 책을 읽는 것 같다. 2주에 한 번 정도 서점을 방문해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살펴보고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 읽어 보며 서너 권정도 골라서 온다.
책 선정에 있어서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지 않고 인문, 사회, 철학, 역사, 문화, 예술 등 다양하게 선택하는데, 가능하면 새로 나온 책 중에서 고르는 편이다. 다만 수강생들이 각자 다양한 시각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의 책이나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책은 제외한다. 여기에다 분기별 한두 권 정도는 현 시점에서 함께 읽어볼만한 과거에 나온 책을 포함시키고 있다.
최근엔 영화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관련 서적 중에서, 간결하고 읽기 편한 번역이 돋보이는 책 한 권을 골라 읽었다. 올 4분기 강의에 포함시킬 계획으로, 지금은 강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사실 책을 고르고 강의를 준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수업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기에, 그런 부분들이 제 삶의 등불이 되고 위로가 되고 있다.
-평생 해온 경영학 교수 생활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 강의를 빠지지 않기 위해 다른 중요한 일도 강의 일정을 피해서 잡는 것으로 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어쩔 수 없이 쉰 것을 제외하면, 600회를 이어오는 동안 딱 한 번 쉰 적이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수술을 받느라 수업을 할 수 없었는데, 그 다음 주 바로 보충수업을 했다.
그만큼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읽어나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강좌를 시작할 무렵부터 14년째 수업을 듣고 계시는 수강생이 세 분이나 될 정도로 다들 수업에 대한 애정이 크다. 그래선지 저 또한 수강생들에게 정이 많이 간다. 하루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뭔가.
▶저는 독서를 목욕탕 욕조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겉만 슬쩍 씻어내는 샤워와 달리 욕조에 몸을 담그면 따뜻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지 않나. 독서 또한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담금질하게 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책이 인생을 바꾸긴 힘들겠지만, 최소한 행동과 사고의 계기는 마련해 준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등불, 혹은 삶의 자양분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3년 동안 좋은 책을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독서의 즐거움과 가치를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