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김수용] 관세·투자·안보 묶어야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

입력 2026-08-1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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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한미 통상 현안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해 무역협상에서 한국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그 대가로 미국의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췄다. 그러나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강제노동 관련 무역법 301조 관세가 결정됐고, 제조업 과잉생산에 대한 301조 조사 결과도 조만간 나온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 우회(迂回) 수출을 겨냥한 '그림자 환적(換積)'까지 문제 삼았고, 반도체와 태양광 패널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에는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를 설정했다.

이런 와중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16일 예정에 없던 방미에 나섰다. 조선 분야 1천500억달러를 제외한 2천억달러 규모 투자 프로젝트의 막판 쟁점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투자 약속이나 양해각서보다 공장과 생산능력, 일자리를 원한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말이나 MOU가 아니라 선박 건조 숫자로 평가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은 폴리실리콘과 파생 제품에 15% 추가 관세와 최저 수입 가격을 적용하면서 미국 내 생산시설 건설 기업의 관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결국 목표는 생산시설, 기술, 일자리를 미국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중국의 우회 수출을 겨냥한 백악관의 '그림자 환적' 보고서도 심각한 사안이다. 한국은 중국 공급망과 연결돼 있으면서 대미 수출 플랫폼이 발달한 국가로 분류됐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원산지와 생산공정, 공급망의 투명성까지 통상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관세율을 낮추는 것만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미국은 상호관세와 301조, 232조, 원산지 규정과 환적 단속까지 갖가지 통상 압박 수단을 총동원하는 모양새다. 관세를 통해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투자와 생산을 공급망 재편과 연결하며, 중국 견제와 제조업 부흥이라는 국가 전략 속에서 실리(實利) 여부를 판단한다. 이런 와중에 통상과 안보의 경계까지 흐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미연합훈련의 대폭 축소를 지시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한국의 대(對)이란 대응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폴리티코는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의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이행 지연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불만도 훈련 축소의 배경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투자와 훈련 축소를 직접 연결한 결정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제·통상과 안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한국은 관세, 대미 투자, 조선과 반도체·에너지 문제를 따로 다루며 대응하고 있다. 더욱이 한미 통상 협상의 실무를 이끌어온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갑작스레 면직(免職)되면서 협상 연속성에 대한 우려까지 커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 요구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이 무엇을 얻어낼지 정하는 일이다. 조선은 중국 견제와 해군력 및 조선업 재건에 필수다. 반도체는 AI 시대의 공급망과 직결된다. 방산은 미국 안보 전략과 연결되고, 에너지와 전력 인프라는 미국 제조업 재건과 데이터센터 확대에 필요한 기반이다. 이를 하나의 협상력으로 묶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은 지금 관세를 통해 한국에 돈을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한국의 생산능력과 공급망, 안보 기여를 미국의 전략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관세·투자·산업·안보를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거래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협상력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