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전 증설 경쟁과 대(對)러시아 제재가 맞물려 원전 연료 수급에 비상(非常)이 걸렸지만, 한국만 중장기 원전 연료 확보전에서 무방비로 뒤처지고 있다.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원자력 발전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원전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구하지 못해 지어 놓은 원전마저 멈춰 설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우라늄 농축 시장은 영국·독일·네덜란드 합작사인 유렌코(Urenco), 프랑스 오라노(Orano), 러시아 로사톰(Rosatom), 중국 CNNC 등 4개 기업이 99%를 점유하는 극단적 과점 구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국가들이 세계 40%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산 수입을 막아서자, 우라늄 농축 가격이 6배가량 치솟았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가 연료를 구하지 못해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업 가동을 2년 연기한 것은 원전 연료 쇼크가 이미 현실화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서방 원전국들은 2040년대 물량까지 입도선매(立稻先賣)하며 총력전에 나섰다. 미국은 27억달러를 투입해 자국 내 공급망 확충에 나섰고, 일본은 정부 차원의 농축 능력 확대 계획을 승인했으며, 체코는 3년치 연료 비축(備蓄)을 법제화했다. 유럽연합(EU) 역시 2032년 소요량의 100%를 선점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응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안이하다. 우리의 농축우라늄 확보율은 2030년 후반 20~40% 수준으로 급락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범정부 컨트롤타워조차 없다. 더구나 우리는 1974년 미국과 우라늄 농축 금지 협정을 맺은 뒤 52년 동안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최근 미국이 원전조차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저농축 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것과 대조적이다.
연료 공급망이 담보되지 않은 원전 르네상스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정부는 원전 건설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핵연료 확보를 국가 외교·안보 전략 차원으로 격상하고 선제적 비축 제도화 등 중장기 조달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