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칼럼] 영덕 선명상센터 유감

입력 2026-08-21 12: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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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한글 창제에 참여했던 조선의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몽산법어(蒙山法語)'에 고려 공민왕의 왕사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혜근(惠勤懶翁)의 법어(法語)를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라는 제목으로 더 붙인 글이다. '몽산법어'는 중국 원 나라 고승 몽산화상(蒙山和尙) 덕이(德異)의 법어를 나옹 선사가 간추려 엮은 법어집으로, 조선시대 가장 많이 읽혔던 선(禪) 수행의 지침서다. '몽산법어'는 필자가 30여 년 전 처음 선(禪) 수행을 하면서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과 함께 머리맡에 두고 읽었던 법어집이다.

조계종은 육조 혜능(六祖惠能)의 선법을 이은 선종(禪宗)이다. 임제종 계통의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체계화한 간화선(看話禪)을 수행법으로 삼고 있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전국선원수좌회가 펴낸 '간화선'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간화선은 조사선이 강조하는 견성 체험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조사 스님들께서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바로 보였던 말길이 끊어진 말씀을 화두라는 형태로 잘 정형화해서 이 화두를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깨치게 하는 탁월한 수행법이다."

간화선은 고려말 세 선지식인 태고보우(太古普愚), 나옹혜근, 백운경한(白雲景閑)에 의해 확고하게 정착됐다. 보우 선사는 간화선을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조계종의 중흥조다. 나옹 선사는 '몽산법어'를 편찬해 유학자들에게도 간화선의 도리를 알려 조선 성리학에 영향을 미쳤다. 백운 선사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편저자로서 간화선 선풍 진작에 기여했다.

그래서 도림법전(道林法傳) 전 조계종 종정은 '간화선' 책 머리에 "昨今(작금)에 看話(간화)의 宗旨(종지)가 幢柱(당주)에 거듭 내걸리니 萬古(만고)의 指南(지남)이요 禪門(선문)의 活句(활구)로다"라고 조계종의 종지가 간화선임을 분명히 했다. 나옹 선사를 비롯한 세 선지식의 간화선 선풍 전통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그 나옹 선사의 고향 경북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203에 '영덕 나옹왕사 선명상 치유센터'가 지난 7월 22일 개원했다. 자연치유 원리에 기반한 3대 핵심 콘텐츠로 '명상(마인드케어)', '요가(기공)', '자연건강음식' 등을 제시하고 있다. '마음을 다듬고 기운을 순환시키며,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경험으로 일상의 활력을 회복한다'는 게 슬로건이다.

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11가지. ①고래불 해수욕장 모래 걷기, ②메타 숲 탐방과 명상·기공, ③감성적 게르에서 명상·요가, ④맑은 공기 속 기공과 태극권을 통한 치유, ⑤싱일볼 명상:소리 진동을 통한 기혈회복 치유, ⑥프리미엄 아로마 테라피:향기를 통한 건강증진, ⑦질병예방, ⑧다양한 차와 명상을 통해 자연회복, ⑨인문학 꽃나들이:야생 풀꽃들과 나무를 통한 자연이해, ⑩인문학 동양문화:중국과 한국의 문화와 건강, ⑪자연건강 음식체험:자연식을 통한 건강회복과 체험 등이다.

그러나 '간화선'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지 않아서 유감이다. '나옹왕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그냥 '영덕 선명상 치유센터'라는 간판을 걸면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조계종이 관리와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면 오히려 적극 권장할 일이다. 일반 국민의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이 변질되고 있는가. 서울에 있는 조계사를 가도 울긋불긋, 봉은사를 가도 울긋불긋, 도선사를 가도 울긋불긋하다. 야간에도 휘황찬란하다. '간화의 종지'는 어디로 가고 '선명상 종지'가 차지해서 그런 것인가.

선명상은 대중화가 아니다. 자칫 불자들의 우민화(愚民化)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찐 대중화'는 일반 국민들에게 간화선을 지도하는 것. 따라서 한국불교의 심장인 영남, 그것도 나옹 선사의 고향 영덕에선 간화선 위주의 선원이어야 한다. 하루빨리 '영덕 나옹왕사 선명상센터'를 '영덕 나옹왕사 선원'으로 바꾸고, 간화선에 집중해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도리를 밝히기 바란다.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 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