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락 한국화가(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인생은 고해(苦海)의 바다를 건너는 항해라고 한다. 불가에는 가라앉는 배의 가르침이 있다. 발밑에 물이 차오르는데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다투는 무지한 욕망은 인간의 오랜 굴레다.
프랑스 화가 제리코가 그린 걸작 '메두사호의 뗏목'은 이 아수라장을 화폭에 생생히 고발한다. 난파된 배 위에서 이기적 탐욕에 눈이 멀어 서로를 밀쳐내고 죽어가는 인간 군상의 비극 말이다. 성경 '요나서'의 풍경도 이와 맞물린다. 폭풍우 속에서 선원들이 살기 위해 아우성칠 때, 정작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 요나는 배 밑창 깊은 곳에서 잠에 빠져 있었다. 폭풍이 배를 흔드는데도 나 홀로 안전하리라 믿는 문명적 둔감함은, 연일 지구촌을 뒤흔드는 역대급 이상기후의 경고 속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망각과 무관심은 현실의 파국을 지워버리는 디지털 환경의 집단적 최면 속에서 깊어진다. 창밖에는 역대급 폭염과 이상기후의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손안의 스마트폰이 편집해 낸 매끄러운 이미지의 신기루에 몰두하는 세태는 요나가 숨어들었던 배 밑창의 아늑한 무관심과 닮았다. 장자(莊子)는 "천지는 나와 나란히 생겨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다"라고 했다. 대자연과 인류는 내 밖의 박제된 배경이 아니라 같이 함께 숨 쉬는 '연장된 몸'이다. 패권과 탐욕이 생태계의 임계점을 넘어선 지금, 대자연의 역습은 부메랑이 돼 인류라는 배의 턱밑까지 차오르고 있다.
코로나 시절 마스크의 역설을 돌이켜본다.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쓴 마스크는 나의 오염이 밖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 방어벽이었다. 이 안팎의 경계에서 얻은 교훈은 명확하다. 이상기후라는 재앙 앞에서 그 누구도 무고한 관객일 수 없으며, 나 자신이 곧 주범일 수 있다는 서늘한 진실이다. 인류가 탐욕의 질주를 멈추고 마스크 뒤로 몸을 숨겼던 순간, 거대한 생태계가 자정 능력을 복원하고 기후의 폭주가 잦아들며 대자연이 본연의 생명력을 되찾았던 반전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의 거대한 화폭이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각으로 삶을 채워나가는 화가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제 욕망의 설계도만 채우려는 맹목적인 붓질은 결국 지구라는 거대한 화면을 망치고 인류라는 배를 좌초시킬 뿐이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힘은 어느 한쪽만 독식하겠다는 위선적인 스케치가 아니다. 먹과 여백이 서로 자리를 내어주며 공존하듯, 자연과 타인이 모두 한 배를 탄 공동체이자 '내 몸의 연장'임을 화폭처럼 깨달아야 한다. 서로를 밀쳐내던 손을 거두고 우주적 상생의 붓질을 시작할 때, 비로소 지구라는 오래된 그림은 다시 푸른 생명력으로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