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김우정 기자
2008년 12월, 경기도 파주의 한 기갑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던 때였다. 군 부대라는 심리도 한몫했겠지만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선진병영이 막 도입되기 시작했던때라 최전방까지는 개선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생활관은 여전히 침상이 쭉 이어진 구막사였다.
그래도 장병 복지를 위한 일환이었을까. 어느날 화장실 한 칸에 비데가 설치됐다. 추운 날씨 차가운 변기에 앉는 것조차 고역이던 장병들은 작은 변화에 환호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 한 칸 앞에는 늘 줄이 늘어섰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개 중대 수십명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다 보니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비데는 고장이 났다.
보통이라면 사용량이 많았던 만큼 몇 대를 더 설치하거나 고쳐 쓰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군대는 달랐다. 고장 난 비데를 수리하지도, 추가 설치하지도 않았다. 그냥 떼어냈다. 원래부터 비데는 없었던 것처럼.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해결하는 대신 문제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 군필자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 군대식 해결법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은 경찰 수사가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경찰은 일반 살인 혐의로 사건을 넘겼지만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강간 등 살인 혐의가 추가됐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확보와 초동 대응, 수사 정보 관리까지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보완수사권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한다. 마치 비데가 고장 났다고 비데를 철거해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제도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과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제도를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은 너무도 단순하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된 뒤 경찰청장은 1년 6개월 넘게 공석이다.
그 사이 경찰은 광주 장윤기 사건 부실수사 논란, 경북 경산 흉기살인 사건 초동 대응 논란, 수사 정보 유출 의혹, 현직 경찰관 음주운전과 성비위 사건 등 조직 기강 해이를 의심받는 사건들을 잇따라 노출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리더십 공백을 방치한 채 "직무대행 체제로도 운영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경찰 조직 내부를 손보는 방식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단골 처방처럼 등장하는 것이 순환보직이다. 특정 부서 인력을 다른 부서로 옮기고 담당자를 교체하면 조직이 쇄신되는 것처럼 포장된다.
수사 경험이 축적돼야 할 전문수사관이 몇 년마다 자리를 옮기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휘부를 교체하는 방식으로는 전문성도 책임성도 쌓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구조를 고치는 일보다 보여주기식 처방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사고가 터지고, 같은 대책이 반복된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도, 경찰의 순환보직식 쇄신도, 리더십 공백을 직무대행으로 버티는 방식도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근본 원인을 손대기보다 눈 앞의 불편만 치우는 '땜질 행정'이다.
잘못된 수사는 바로잡을 장치가 있어야 하고, 경찰은 책임 있는 리더십 아래 전문성을 키워야 하며, 조직은 사건이 날 때마다 사람만 바꾸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데는 고장 날 수 있다. 하지만 고장 났다고 비데를 없애는 조직은 발전하지 못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도를 철거하고 사람만 돌려막는 방식으로는 국민의 신뢰도, 사법 정의도 결코 세울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