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세포의 시계를 되감는다"… 노화, 자연현상에서 '치료 대상'으로

입력 2026-08-0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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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재프로그래밍·좀비세포 제거·텔로미어·AI 신약… 세계 실험실의 노화 정복 최전선

지난해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 8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명 연장과 장기 이식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생중계 화면에 잡혔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 8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명 연장과 장기 이식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생중계 화면에 잡혔다. 연합뉴스

"인체 장기는 계속해서 이식할 수 있고, 오래 살수록 더 젊어지며 불멸도 가능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1952년 10월생) 러시아 대통령의 말이 통역을 거쳐 중국어로 흘러나왔다. 시진핑(1953년 6월생) 중국 국가주석은 "일각에서는 이번 세기 안에 인간이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지난해 9월 3일 중국 베이징. 전승 80주년 기념 열병식 생중계 화면에 두 노(老)지도자의 대화가 잡혔다.

절대 권력자의 불로장생 꿈은 새로울 게 없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신하들을 사방에 풀었지만 끝내 빈손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는 연금술사들에게 '불사의 영약' 엘릭서를 좇게 했지만 역시 헛일이었다. 다만 이번엔 다르다. 그 오랜 꿈의 뒤를, 과학이 받치고 있다.

노화된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노화된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역노화(reverse aging)' 기술이 지난달 9일 인류 최초로 인체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했다. 병상에 누운 백발 노인의 팔에 젊은 세포를 실은 주삿바늘이 꽂히는 순간. 그 위로 유전자 이중나선 그래픽이 겹친다. 수명 연장을 원하는 노인과 컬러의 세포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1900년대 초 40~50세에 머물던 인간의 평균 수명은 한 세기 만에 곱절로 늘었다. 국내 100세 이상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9,000명(올해 6월 30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기준)을 넘어섰다. 공식 세계 최장수 기록은 122세, 1997년 숨진 프랑스인 잔 칼망이다.

지난 6월 9일(현지 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바이오 기업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가 개발한 '역(逆)노화' 유전자 치료제가 인류 최초로 사람 몸에 투여됐다.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되돌리는 약이다.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치료다. 인류는 노화를 '늦추는' 시대를 지나, '되돌리는' 시대로 들어섰다. 이제 물음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젊게 사느냐다.

늙은 세포를 다시 젊게 되돌리는
늙은 세포를 다시 젊게 되돌리는 '노화 역전'이 마침내 실험실을 벗어나 사람의 몸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맞던 노화를 늦추는 항노화·롱제비티(Longevity·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지난달 미국의 한 병상에 주사기 하나가 들어갔다. 담긴 것은 약이 아니었다. 늙은 세포에게 젊었던 시절을 기억하라고 지시하는 유전자였다. 늙은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역노화(rejuvenation)' 유전자치료가 세계 최초로 사람에게 투여됐다.

미국 바이오기업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가 후성유전학적 리프로그래밍 기술로 만든 'ER-100'이다. 노화 속도를 늦추거나 노화세포를 걷어내는 데 머물던 실험이, 세포의 나이를 되감는 쪽으로 넘어간 첫 순간이었다.

노화는 더 이상 순응해야 할 자연현상이 아니다. 세계의 실험실은 노화를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다시 정의하고 있다. 학문 이름까지 붙었다. 노인의학, 제로사이언스(Geroscience)다. '인간의 수명을 150세까지 연장하는 기술'이 입증된 것은 없지만 노화 자체를 치료하려는 연구는 세계 각국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100세 이상 초고령 인구도 사상 처음 9,000명을 넘어섰다. 올해 6월30일 기준 100세 이상 노인은 9,041명이다.
국내 100세 이상 초고령 인구도 사상 처음 9,000명을 넘어섰다. 올해 6월30일 기준 100세 이상 노인은 9,041명이다.

◆몸의 나이를 되감는다… 세포 재프로그래밍

전제가 하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상의 나이와 몸의 나이는 다르다. 유전자에 붙은 화학적 표지를 읽어 몸의 나이를 계산하는 '후성유전학적 시계'가 등장하면서, 노화는 측정되는 수치가 됐다. 측정할 수 있으면 개입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 노화 연구는 이 한 줄에 올라타 있다.

연구는 크게 다섯 갈래로 갈린다. 가장 앞선 축은 세포 재프로그래밍이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찾아낸 '야마나카 인자(OSKM)' 네 가지 유전자를 늙은 세포에 넣으면, 세포가 젊은 상태의 일부를 회복한다.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의 의학자이자 줄기세포 연구자다. 그는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 거부반응 없는 치료법을 만들고, 난치병 치료와 신약 개발의 길을 열었다.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의 의학자이자 줄기세포 연구자다. 그는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 거부반응 없는 치료법을 만들고, 난치병 치료와 신약 개발의 길을 열었다.

문제는 강도다. 완전히 초기화된 세포는 종양으로 자란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스위치를 잠깐만 켜는 '부분 리프로그래밍'에 집중한다. 이번에 사람에게 투여된 ER-100도 초기화 인자 일부만 전달하는 방식이다.

자본은 이미 이동했다. 구글 창업자 등이 참여한 알토스랩스, 오픈AI 창업자가 투자한 레트로바이오사이언스가 조(兆) 단위 자금을 이 기술에 쏟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세포 리프로그래밍을 주력 파이프라인으로 삼은 대형 기업이 사실상 없다. 서울대·동국대 등 대학 연구실이 원천기술을 붙들고 있는 단계다.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노화세포 제거(세놀리틱스)와 텔로미어 복원 기술을 연구하며 건강수명 연장과 암 위험 통제 사이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노화세포 제거(세놀리틱스)와 텔로미어 복원 기술을 연구하며 건강수명 연장과 암 위험 통제 사이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좀비세포와 텔로미어… 젊음과 암은 같은 문을 쓴다

두 번째 축은 노화세포 제거, 이른바 세놀리틱스다. 죽지도 않고 제 기능도 하지 않는 노화세포는 '좀비세포'로 불린다. 이들은 염증 물질을 뿜어내며 각종 노인성 질환의 원인이 된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구진은 좀비세포를 제거한 생쥐에서 건강수명이 늘고 수명도 연장되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도 일부 진행되고 있다. 노화를 늦추는 대신 '노화한 것만 골라 버린다'는 접근이다.

세 번째는 텔로미어다. 염색체 끝을 감싼 이 보호막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고, 텔로미어가 닳으면 노화가 진행된다. 이를 복원하거나 유지하는 유전자 치료는 동물실험에서 수명 연장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세포에 분열의 여지를 되돌려주는 일은 암세포에도 같은 문턱을 낮춘다. 사람 대상 연구가 아직 제한적인 이유다. 노화 정복 연구가 번번이 부딪히는 벽이 여기에 있다. 젊음과 암은 같은 문을 쓴다.

연구진이 첨단 실험실에서 장수 관련 약물 후보를 분석하고 인공지능으로 신약 가능성을 선별하고 있다. 화면에는 분자구조와 노화 바이오마커,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가 표시돼 있으며, 노화 연구가 개별 약물 개발을 넘어 국가 간 바이오산업 경쟁으로 확산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연구진이 첨단 실험실에서 장수 관련 약물 후보를 분석하고 인공지능으로 신약 가능성을 선별하고 있다. 화면에는 분자구조와 노화 바이오마커,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가 표시돼 있으며, 노화 연구가 개별 약물 개발을 넘어 국가 간 바이오산업 경쟁으로 확산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알약에서 국가 경쟁으로

네 번째는 장수 유전자와 약물이다. 당뇨약 메트포르민, 면역억제제 라파마이신, NAD+ 관련 물질인 NMN·NR이 대표 후보다. 목표는 수명 연장이 아니라 노화 속도를 늦춰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있다. 다만 이들이 150세를 가능하게 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 가운데 메트포르민은 미국에서 수천 명 규모의 노화 지연 임상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수십 년간 처방된 값싼 약이 노화 자체를 늦출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결과가 나와도 문턱은 남는다. 현재 각국 규제 체계에서 노화는 질병 코드가 없다. 질병이 아니니 치료제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는 인공지능이다. 미국·영국·중국에서는 AI로 노화 원인을 분석해 신약 후보를 찾는 프로젝트가 급증했다. 수십만 개 후보 물질을 사람 대신 알고리즘이 걸러낸다. 실험실의 시간표가 달라졌다.

국가도 뛰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노화 연구에 연간 10억달러 규모를 투입하는 재단을 세웠고, 영국은 국가 연구기구에 노화 프로그램을 넣었다. 중국은 세포 치료와 유전자 편집을 국가 전략 과제로 묶었다. 노화 연구는 학문에서 산업으로, 다시 국가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에 100세를 넘긴 이는 9,041명. 사상 처음 9,000명을 넘어섰다. 대구에 307명, 경북에 587명이 산다.100세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사람들은 그다음, 150세를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