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2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23일까지
11개 섹션…80년 시대정신 담은 사진 등 400점 전시
매일신문사는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으로 오는 11일부터 2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제11~13 전시실에서 '매일신문 80년 대구경북 80년(1946-2026),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 사진전을 갖습니다. 사진전에는 매일신문이 기록해 온 격동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대형사진(1.5mⅹ1m), 신문 지면 등 약 400점을 선보입니다. 대한민국 80년 시대정신을 연표, 해설과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개막식은 11일 오후 2시에 열립니다.〈편집자 주〉
올해로 창간 80주년을 맞은 매일신문(每日新聞)은 1946년 남선경제신문(南鮮經濟新聞)으로 출발했다. 이어 1950년 3월 경제신문으로, 그해 8월 1일 다시 제호를 '대구매일신문'으로 바꿔 종합 일간지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후 1960년 7월 7일 취재망을 전국화 하면서 '매일신문'으로 변경해 오늘 자(3일)로 지령 2만5천86호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매일신문은 대한민국 현대사, 특히 대구경북 80년 역사적 순간들을 지면과 사진으로 오롯이 기록해 왔다.
그 80년 격동의 현장을 한자리에 모았다. 사진전 주제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80년을 관통하는 시대정신. 이를 위해 매일신문 아카이빙센터에 소장 중인 방대한 기록사진과 지면을 1년에 걸쳐 발굴, 고화질로 복원해 400점을 엄선했다. 전시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11개 섹션에 대형사진(1.5mⅹ1m)과 각각 해설을 달아 80년 시대상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제1섹션=생존…폐허를 딛고 일어서다
1945년 8월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해 신탁통치에 들어갔다. 미·소 군정(軍政)기 극도의 이념 대립 속에 남북은 각각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혈육은 흩어지고 강산은 폐허로 변했다.
제1섹션에서는 미군정 초기 대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날 대구,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 대구와 피란촌, 재건을 위한 문경 시멘트공장 준공, 해방 이후 가장 무서웠던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덮친 그날 등을 생생한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 제2섹션=혁명…쓰레기통에서 장미 꽃피다
자유당 정권은 '4사5입(四捨五入)'개헌으로 장기 집권 체제를 마련했다. 당시 대구는 야도(野都)였다. 독재에 굴하지 않은 언론, 높은 교육열로 대구는 어느 지역보다 시민의식이 높았다. 이런 토양 위에 일어난 2·28학생의거는 4·19혁명으로 이어져 12년 자유당 독재정권을 물리치는 출발점이 됐다.
제2섹션은 2·28학생의거 전사(前史)로 일컫는 이른바 '백주의 테러' 대구매일신문 피습사건, 3·15 부정선거와 2·28학생의거, 4·19혁명의 그날 대구, 1962년 2·28학생의거 기념탑이 제막되기까지 숨가빴던 순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제3섹션=근대화·산업화…가난을 물리치다
1960년 4·19혁명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61년 5월, 군사정변으로 다시 군정(軍政)시대를 맞았다. 정치 전면에 나선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일성은 '국가재건'. 2년간의 군정에 민정(民政) 이양 요구가 거세지자 군인 박정희는 군복을 벗고 1963년 10월 제5대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대통령 박정희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제3섹션은 '체력은 국력', '국민교육', '신라 역사문화 개발', '국토건설단' 등 박정희 시대국가 재건 과정을 조명한다. 또 식량증산, 수출을 위한 구미 농산물 가공공장 준공, 두 번 열린 포항제철 기공식 등 근대화·산업화 초기 가난을 물리치던 그날을 돌아본다.
◆ 제4섹션=보릿고개…아련한 그 시절을 돌아보다
1960년대 민초들의 삶은 너나 없이 힘들었다. 서문시장 대화재로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었다. 해마다 닥치는 물난리, 무시로 찾아드는 가뭄에 고사리 손까지 두 팔을 걷어붙였다. 춘궁기 신천 근로구호 공사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그래도 민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961년 대홍수로 물바다가 된 영주에서는 수해를 복구하면서 가흥산 허리를 잘라 물길을 바꾸고, 영주역까지 옮기는 대역사를 썼다. 제4섹션은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던 아련한 그 시절을 모았다. 도심 외곽으로 온통 논밭 일색인 1964년 하늘에서 본 대구 풍경은 유년의 추억이 울컥 묻어 난다.
◆제5섹션=근대화·산업화…대(大)대구를 건설하다
1965년부터 시작된 '대(大)대구 건설'은 인구가 급증해 대구 첫 도시 계획(1937년)이후 28년 만에 대구를 새로 확장하는 프로젝트였다. 동쪽 구릉지엔 신도시 거점 동대구역 신설, 허허벌판 서쪽엔 낙동강 물을 끌어 식수를 해결 할 강정상수도(옛 두류정수장) 건설, 남쪽엔 한옥 베드타운, 그리고 대구역 북쪽 들판은 산업화를 견인할 제3공단 부지로 낙점됐다.
쓸 곳은 많은데 예산은 턱 없이 모자랐다. 해가 가도 공사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궁리 끝에 당국은 공설시장인 서문시장을 민간에 불하해 건설비를 충당했다. 당시 넓직하게 계획한 동서관통로(달구벌대로)는 착공 14년 만인 1979년에서야 완공됐다. 제5섹션에서는 그 시대를 살아 온 아버지 어머니들이 피땀으로 일군 그날의 대(大)대구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