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장기 갈아끼우는 시대도 '성큼'… 포항선 '인공 간·심장' 찍어낸다

입력 2026-08-01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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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이종장기·3D 바이오프린팅 3파전… 닳은 장기, 이젠 고치지 말고 새로 만든다

닳은 장기를 고치는 시대에서 새로 만드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몸에 착용하는 기계식 인공장기(왼쪽부터),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에서 얻은 이종장기, 세포와 바이오잉크를 층층이 쌓아 혈관까지 구현한 3D 바이오프린팅 장기. AI로 생성한 이미지
닳은 장기를 고치는 시대에서 새로 만드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몸에 착용하는 기계식 인공장기(왼쪽부터),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에서 얻은 이종장기, 세포와 바이오잉크를 층층이 쌓아 혈관까지 구현한 3D 바이오프린팅 장기. AI로 생성한 이미지

지난 5월 프랑스 기업 카르마의 인공심장 '에이손'이 유럽 일부 시장에서 판매를 재개했다. 사람의 심장 박동을 모사하는 이 장치는 기증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생산 라인에서 나온다.

의학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닳은 장기를 고치는 단계에서, 새로 만들어 갈아끼우는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전 세계 인공장기·생체공학 시장은 올해 483억9,000만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 442억3,000만달러에서 1년 만에 40억달러 이상 늘어났다. 2034년에는 992억8,000만달러, 연평균 9.4% 성장이 예상된다.

◆기계식·이종장기·바이오프린팅… 세 갈래 경쟁

경쟁은 세 갈래로 갈린다. 첫째는 기계식이다. 마찰을 없앤 자기부상 회전형 인공심장이 주류가 됐고, 집에서 착용하는 웨어러블 인공신장(WAK)도 필터 기술 혁신으로 상용화 문턱에 닿았다. 미국 바이바코의 완전 인공심장은 올해 3월 임상 진전을 발표했다. 이 분야는 이미 규제 승인의 궤도에 올라 있다.

둘째는 유전자 편집 이종장기다. 미국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편집한 돼지 신장과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을 가속하고 있다. 동물 장기를 사람 몸이 공격하지 않도록 유전자를 미리 손보는 방식이다.

셋째는 3D 바이오프린팅이다. 환자 본인의 줄기세포와 바이오잉크를 섞어 장기를 출력한다. 최근에는 세포를 층층이 쌓는 수준을 넘어, 실제 장기처럼 혈관 내벽을 만들고 산소를 공급하는 범용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라마다 무기가 다르다. 미국은 재생의학 전 분야와 세계 최대 시장을 쥐었다. 유럽은 카르마를 앞세운 생체모사 기계식 장기와 정밀한 규제 체계로 다국적 연구를 끌고 간다. 일본은 iPS 세포(역분화줄기세포)로 망막과 심장 근육 시트 임상을 선도한다.

뇌사 기증자가 2년 연속 줄어 지난해 370명에 그친 사이, 이식 대기자는 5만4,789명으로 늘어 하루 평균 8.5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숨지고 있다.
뇌사 기증자가 2년 연속 줄어 지난해 370명에 그친 사이, 이식 대기자는 5만4,789명으로 늘어 하루 평균 8.5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숨지고 있다.

◆혈관·면역·규정, 넘지 못한 세 개의 벽… 대기 4년, 신장은 7년 9개월

기술은 아직 문턱 앞에 있다. 첫 번째 벽은 혈관이다. 간이나 신장 같은 큰 장기는 미세혈관 끝까지 산소와 영양분이 닿아야 살아 있다. 이 혈관망을 구현하는 것이 현재 최대 난제다. 완전한 기능을 갖춘 3D 프린팅 장기가 여전히 '몇 년 뒤'로 남아 있는 이유다.

두 번째 벽은 면역이다. 인공 재료든 동물 세포든 몸에 들어오면 면역계가 공격한다. 크리스퍼가 선택이 아닌 필수 도구로 붙는 지점이다.

세 번째 벽은 규정이다. 살아 있는 생체 인공장기를 같은 품질로 반복 생산할 수 있는지, 그것을 누가 어떻게 검증할지에 대한 국제 기준은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꿈은 세포 단위로 달리는데, 현실에선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숨지는 환자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장기이식 대기자는 5만4789명, 평균 대기 기간은 4년이다.

신장이식은 평균 7년 9개월을 기다린다. 그사이 하루 평균 8.5명이 차례를 기다리다 숨진다. 기증은 오히려 줄었다. 뇌사기증자는 2023년 483명을 정점으로 2024년 397명, 2025년 370명으로 내려앉았다. 기증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이 격차가 메워지지 않는다.

3D 바이오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간·심장 모델을 연구진이 살펴보고 있다. 세포를 층층이 쌓아 실제 장기와 같은 구조·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바이오프린팅의 목표로, 인공장기 대량 생산 시대를 여는 최전선 기술로 꼽힌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3D 바이오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간·심장 모델을 연구진이 살펴보고 있다. 세포를 층층이 쌓아 실제 장기와 같은 구조·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바이오프린팅의 목표로, 인공장기 대량 생산 시대를 여는 최전선 기술로 꼽힌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한국의 승부수'3D 바이오프린팅'… 포항서 자라는 인공 간·심장

방향을 먼저 튼 쪽은 국내 연구진이다. 고치는 대신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 포스텍 기계공학과 장진아 교수다. 지난해 젊은과학자상을 받은 그는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를 이끌며 인공 간과 심장을 만들고 있다.

연구팀이 다루는 장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장과 혈관, 폐·위·췌장·각막·기관·식도·장까지 사람 몸속 주요 조직과 장기 모델을 동시에 붙들고 있다.

장 교수는 바이오프린팅을 "살아있는 세포와 생체 재료를 층층이 적층해 기능성 인체 장기를 제작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손상된 조직을 겉에서 보완하는 데 머물렀던 기존 의료기술과 달리, 실제 인체 조직과 똑같은 구조와 기능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장진아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장은
장진아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장은 "인간의 살아있는 조직을 만드는 기술은 형태와 기능이 조화를 이룰 때 생명공학의 꿈이 비로소 시작된다"며 "이런 기술이야 말로 인류의 난제인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에 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연구분야다"고 말했다.

이 구상이 자라나는 곳은 경북 포항 흥해읍의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다. 포항테크노파크가 운영을 맡은 이곳은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인공 간·심장 같은 맞춤형 장기 제작 기술의 상용화를 돕는다.

핵심은 '작게 만들어 크게 키우는' 전략이다. 연구팀은 먼저 간이나 심장 근육세포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 구조를 작은 조직 단위로 찍어낸다. 이를 배양하고 조립해 실제 간 크기까지 불려 나간다.

목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전 과정을 자동화해 인공장기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장 교수는 "미래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단순 조직 제작을 넘어 인간의 장기 대체 시대를 여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바이오소재 기술이 결합되면 의료 패러다임 자체가 크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낡은 장기를 갈아끼우는 시대가 더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