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흠 극작가
"제가 원래 진상은 아닌데…"로 시작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생각했다.
'아, 또 긴 이야기가 시작되겠구나.'
그렇다, 바야흐로 지금은 민원의 시대다.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를 보러 갔을 때였다. 극장 문 앞에 "본 영화에는 강한 번쩍임이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처음에는 새롭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히어로 영화라면 악당과 맞서 싸우는 장면이 핵심일 텐데 이것까지 안내가 필요할까.
영화뿐 아니라 공연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소송 문화가 발달한 나라 미국의 제품설명서처럼 공연 안내가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해지기 시작했다. 공연 시간과 티켓 배부, 음식물 반입 여부 정도였던 안내가 이제는 공연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빼놓지 않고 꾹꾹 눌러 담는다. 주차 문제부터 입장 지연 규정, 촬영금지 등등 온갖 주의사항을 넣다 보면 안내사항이 공연 상세페이지보다 더 길어질 때도 있다.
이 깨알 같은 안내문들은 관객을 향한 친절한 배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민원'을 피하고자 기획자들이 만든 방탄조끼에 가깝다. 안내문에 미리 적어두었으니 면책받겠다는 눈물겨운 모습인 거다. 조금의 불편이나 뜻밖의 상황을 참지 않고 "왜 미리 경고하지 않았느냐"며 항의하는 시대가 만든 씁쓸한 모습이다.
물론 모든 민원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공연장 계단이 위험하다거나, 장애인을 위한 안내가 부족하다거나, 관객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목소리는 필요하다. 그런 생산적인 민원 덕분에 공연 환경이 조금씩 나아진 것도 사실이니까.
문제는 '불편'과 '불만'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계가 흐려진 틈을 타 불편함이 정당한 권리처럼 나타나는 일이 적지 않으니, 창작자와 기획자들은 때아닌 자기검열에 들어간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의무를 강요하는 관객과 상상력을 펼치기보다 민원 받지 않을 안전한 선이 어디인지를 먼저 계산하는 기획자. 기획자와 관객이 서로 눈치싸움을 하는 전쟁터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생각한다.
상대의 명백한 악의나 과실이 아님에도 매 순간 잘잘못을 가리려 든다면, 우리의 삶은 숨 막히는 법정이 될 뿐이다. 예술이란 본디 예상치 못한 감정의 일렁임을 마주하는 일이며, 낯설고 불편한 자극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명백한 악의나 과실이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털어내는 느슨한 마음을 가질 순 없을까. 빽빽한 안내문 뒤로 숨지 않고도 지금의 '민원의 시대'를 버텨내게 하는 인간다운 온기를 찾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