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이슈] 프랑스의 쇠락-리더가 국가 흥망을 좌우한다

입력 2026-07-17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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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올랑드 전 프랑스대통령
프랑수아올랑드 전 프랑스대통령

프랑스는 시민 혁명(1789~1799년) 이후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잡은 뒤 프랑스 제1제국을 개국하고 통치할 때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참전국이자 승전국이었던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프랑스 식민제국은 1938년에 정점을 이루었으며 당시 세계 인구의 5%가 프랑스 영토에 거주했다. 현재의 프랑스는 샤를 드골 대통령 등이 1958년에 세운 프랑스 제5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설립 시부터 독일과 함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세계 5~6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소프트파워에서도 세계적인 문화 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전 세계 1억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관광 대국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현재 모습은 '유럽의 병자'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 위상이 떨어지고 중·하층민들의 삶은 고달퍼졌다.

20세기까지 잘 나가던 경제대국을 단 5년 만에 몰락시킨 프랑스의 리더는 프랑스아 올랑드 대통령이다. 그가 사회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포퓰리즘을 남발하면서 프랑스 기업과 기업인들이 탈출하고, 경제 토양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럽 일부 국가나 중남미 국가에서 보듯 한 국가의 리더가 어떤 사상을 갖고 정책을 실현하는 가에 따라 국운이 좌우된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사회주의 정책과 포퓰리즘을 간파하는 국민들의 집단지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프랑수아올랑드 전 프랑스대통령
프랑수아올랑드 전 프랑스대통령

◆프랑스의 쇠락을 초래한 리더의 역정

올랑드는 2012년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를 누르고 제24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7년 만에 사회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그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른바 극우 성향, 어머니는 좌파 성향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루앙 시의회 선거에서 국가장 우파적인 국민전선의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로마 가톨릭교회 교도로 정치적 성향은 기독교 좌파였으며, 2008년 칸 시의회 선거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저녁 식탁에서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집안 분위기가 싸늘했다. 부모가 서로 다른 정당을 따랐다. 올랑드는 아버지의 사상이 너무 싫었고 좌파 복지사인 어머니 노선을 따랐다.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란 올랑드는 반발 심리로 좌파의 길을 걸었다.

올랑드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파리경영대학,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에나, ENA)를 졸업했다. 이 세 학교를 모두 졸업한 정치인은 지금도 찾기 힘들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는 모교인 파리정치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실업률이 높아지고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며 경제가 악화되자 사회당 후보로 나선 올랑드에게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가 쏠렸다. 그는 프랑스 사회당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올랑드의 이상적인 정책들로 프랑스 실물경제가 망가지자 지지율도 함께 급락했다.

결국 프랑스 사회당과 올랑드의 지지율은 임기말 20% 이하로 떨어졌으며, 극우파 마린 르펜의 지지율이 1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레임덕이 극에 달했던 2016년에는 올랑드의 지지율이 4%까지 추락했다. 결국 그는 차기 대선에서 사회당 소속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이 지난 5월 11일 한국을 찾았다. 2023년 방문 이후 3년 만이다.로이터=연합뉴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이 지난 5월 11일 한국을 찾았다. 2023년 방문 이후 3년 만이다.로이터=연합뉴스

◆나라 망친 사회주의 정책과 포퓰리즘

2012년 5월 대통령이 된 사회당 출신 프랑수아 올랑드의 선거운동 구호는 강력했다. 그는 '금융은 나의 적'이라 선언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자들을 살리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열광했다. 드디어 정의가 온다고 믿었다.

올랑드가 권좌에 오르자마자 한 일은 충격적이었다. 부자들에게 매기는 세금을 무려 75%까지 올렸다. 일해서 번 돈 4분의 3을 세금으로 때린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정책들이었다.

심지어 회사 매각 차익까지 세금을 매기는 법을 만들었다. 회사 매각 수익의 60%를 징수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나 '선한 의도'속의 사회주의 정책들은 시한폭탄이 됐다. 프랑스 최고부자들이 결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배르나르 아르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중의 하나다. 루이비통, 디올 등 세계 최고 브랜드의 CEO로 프랑스 경제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2012년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다. 이유는 부자세금 75%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삼성전자 회장이 세금이 무서워 옆나라 국적을 신청한 격이다.

이건 신호탄이었다. 다른 기업회장들과 스포츠 스타, 유명 가수, 은행 임원 등 부유층들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러시아 국적을 신청했다. 푸틴 대통령이 국적 신청서를 들고 직접 환영하기까지 했다.

부자세금 75%를 피하기 위해 수많은 부자들이 세금이 적은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이 30만명을 넘어섰다. 런던이 프랑스의 6대 도시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AI로 생성한 이미지
부자세금 75%를 피하기 위해 수많은 부자들이 세금이 적은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이 30만명을 넘어섰다. 런던이 프랑스의 6대 도시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AI로 생성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부자들이 세금이 적은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이 30만명을 넘어섰다. 런던이 프랑스의 6대 도시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프랑스를 탈출한 이들은 부유층만이 아니었다. 회사를 일으킨 창업가들과 재능있는 젊은 인재들마저 프랑스를 버리기 시작했다.

올랑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집값까지 강제로 묶는 법을 만들었다.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이었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갔다. 임대 시장 자체가 얼어 붙었다. 집주인들이 세를 놓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파리시민들과 젊은 층들은 집을 구하지 못해 파리 외곽으로 쫒겨났다.

또 교원 6만명을 더 뽑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공무원 일자리가 생기니 젊은층이 박수를 치고 부모들도 좋아했다. 재원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자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면서 세금이 이전보다 덜 걷혀 이 공약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파리의 주택 임대난으로 인해 젊은이들이나 중산층이 파리 외곽으로 밀려나는 상황을 AI로 생성한 이미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파리의 주택 임대난으로 인해 젊은이들이나 중산층이 파리 외곽으로 밀려나는 상황을 AI로 생성한 이미지.

◆올랑드가 한국에 던지는 교훈

올랑드는 부잣집 자제로 엘리트중의 엘리트였고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었다. 대중을 사로잡는 말솜씨도 뛰어났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잘 할 줄 알았다. 올랑드는 현실에서 왜 무너졌을까? 올랑드는 회사 하나 운영해본 적 없었고 가게에서 손님 하나 받아본 적 없었다. 책으로만 경영을 배웠고 교실에서만 정치 토론을 했다.

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고, 실물 경제현장은 더더욱 어두웠다.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믿으며 머리 속은 사회주의 교리로 가득 찼다. 그는 현실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채 교과서 속의 이상만 좇았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금융은 나의 적'이라며 기업과 부자들을 적으로 치부했다. 이는 재벌과 대기업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좌파와 일부 정치인들의 사고와 닮았다.

올랑드의 부동산 정책과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책도 유사점이 있다. 집값을 강제로 묶은 올랑드의 정책처럼 이재명 정부도 주택공급을 늘리는 대신 대출규제와 세제강화를 통해 집값을 잡으려 하다보니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인상을 가져와 청년층과 서민들이 더 고통받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프랑스 헌법재판소가 부자세금 75%를 위헌 판결했지만 올랑드 정부는 순순히 따르지 않고 편법을 썼다. 이름과 적용방식을 살짝 바꿔 그대로 시행했다.

올랑드는 부자세금 75%로 세금을 더 걷어 자신의 공약을 실천할 계획이었지만 기업과 부자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면서 세금은 이전 보다 더 줄었다.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청년들이 거리로 나 앉고 중년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올랑드 집권이 후 2013년 실업률이 10%에 달했고 특히 청년실업률은 25%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올랑드 정부 안에서도 동요가 일기 시작했고 급기야 정권까지 잃었다.

이정태 교수는 "'선한 의도'로 포장된 급진적 사회주의 정책이나 좌파 정책들이 한 순간은 약발이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며 "올랑드의 사례는 국가 리더의 정책이념과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