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표시등 가리면 그만"…AI 스마트 안경, 불법 촬영 온상 되나
메타가 안경 제조사 레이밴·오클리와 손잡고 만든 AI 스마트 안경을 지난달 한국에 공식 출시했다.
편리한 웨어러블 기기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이 제품이 여성을 상대로 한 무단 촬영 도구로 악용되며 '변태 안경'이라는 오명을 얻은 지 오래다. 국내에서도 판매 채널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조 파트너사인 에실로룩소티카는 2025년 한 해 동안 AI 안경을 700만 개 이상 판매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2023년과 2024년 합산 판매량 200만 개의 3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글로벌 스마트 안경 시장에서 메타가 82%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메타는 현재 연간 생산량을 2,000만 개로 두 배 늘리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피해 양상은 이미 충격적이다.
BBC, 인디펜던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영국, 미국, 호주에 거주하는 여성 7명이 스마트 안경을 통한 몰래 촬영의 피해자가 됐으며,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촬영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게재된 뒤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주로 남성이 낯선 여성에게 연락처를 묻는 등 접근하며 영상을 찍고, 모자이크도 없이 온라인에 올려 조회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더욱 섬뜩하다.
런던의 한 매장에서 피해를 입은 21세 딜라라는 자신에게 접근해 대화를 건 남성과 연락처를 교환했는데, 그 남성이 착용한 스마트 안경으로 대화 전 과정이 촬영되고 있었다. 그녀의 연락처가 그대로 노출된 영상은 틱톡에 올라가 130만 뷰를 기록했고, 이후 딜라라는 수많은 전화와 문자 폭탄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한 여성은 해당 영상을 삭제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유럽에서도 피해가 잇따랐다.
벨기에 방송사 RTBF는 브뤼셀 중심가에서 남성들이 메타의 레이밴 스마트 안경으로 여성들을 몰래 촬영한 사례를 파헤쳤으며, 일부 영상은 이른바 '연애 코칭' 사업과 연계된 소셜미디어 콘텐츠로 활용됐다.
스페인에서는 한 데이팅 코치가 여성들에게 알리지 않고 메타 안경으로 촬영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기기 구조에 있다.
안경에는 촬영 중임을 알리는 소형 LED 표시등이 달려 있지만, 해당 표시등을 가리는 방법을 설명하는 튜토리얼이 온라인에 넘쳐난다는 사실이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몰래 촬영 방지 기능의 허점을 노리는 제품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며, 안경 센서 측면으로 빛이 흘러들어가게 하되 앞면 표시등에 불이 켜졌는지는 볼 수 없게 하는 차단 커버까지 유명 쇼핑몰에 등장했다.
이런 시도가 확산하자 메타는 LED 센서를 활용해 표시등을 가리면 촬영이 아예 되지 않도록 재설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새로운 우회 방법의 등장으로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CNN 보도에서 피해 여성들은 촬영되고 있는 줄도 몰랐고, 영상이 온라인에 게시되는 데 동의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은 일반인 무단 촬영에서 그치지 않는다.
2026년 2월 스웨덴 언론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케냐 소재 하청업체 직원들이 메타의 AI 학습 과정에서 스마트 안경으로 촬영된 영상을 검토했으며, 해당 영상에는 나체, 성행위, 사용자 가정 내 사적인 장면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용자 스스로도 자신의 사생활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해외 각국은 규제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 공군은 올해 2월 개정한 복장 규정에 군복 착용 시 AI 안경 착용을 금지한다고 명시했고, 필라델피아시는 3월 말부터 모든 법정에서 스마트 안경 착용을 금지했다. 스위스 해운사 MSC도 지난해 12월부터 선박 내 공용 공간에서 AI 스마트 안경 사용을 금지했다.
스마트 안경 소지자의 접근 여부를 블루투스 신호로 감지해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구글 앱 마켓에서 10만 회 이상 내려받힌 인기 앱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반면 국내 법·제도적 대응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웨어러블 기기 특성상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할 때 불빛이나 소리로 촬영 사실을 명확히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 출시를 허가할 때 이런 부작용을 충분히 살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가운데, 다른 몰카는 소지 자체가 불법인 데 반해 메타 안경은 웨어러블 기기라는 이유로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규제 당국 모두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버밍엄시티대학교 산업 AI 전문가 아인 라이스 교수는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기기가 출시됐고, 규제는 더더욱 갖춰지지 않았다"며 기업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영국의 프라이버시 전문 변호사 역시 "현재 영국에는 공공장소에서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없다"고 지적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퉐 스마트 안경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으며, 구글은 삼성전자·젠틀몬스터 등과 협력한 AI 스마트 안경을 올해 가을 출시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상태다.
기술의 편의성과 사생활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업계와 규제 당국의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AI 안경이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속도만큼, 피해 방지를 위한 법적 규율과 플랫폼 책임 강화가 함께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