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5)행복과 불행이 닥쳐오면 늘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입력 2026-08-27 09: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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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난다 "운명에 휩쓸리지 말고 고요하고 평온하라"
하대성 퇴역 중령 "평온하게 맞는 하루가 행복"

파라마한사 요가난다(1893~1952)는 인도의 영적 스승이자 요가 수행자로, 동양의 명상과 요가 철학을 서구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다. 크리야 요가 수행 전통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 수련과 영적 각성을 강조했고, 미국과 유럽에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며 큰 영향을 남겼다. 저서 「행복: How To Be Happy All The Time」은 그의 강연과 기고문 등에서 가져온 내용들을 엮은 것으로, 어떻게 하면 늘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알려준다.

▷지금 여기에서 바로 행복하라= 그대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병약하든, 젊었든 늙었든 행복하기로 결심하라. 그대가 누구든, 그대가 어디에 있든, 지금 바로 자신 안에서 행복하기로 결심하라. 그대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기 전에 자신이나 가족, 주변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라. 지금 자신을 보며 "나는 행복해"라고 말할 때 그대는 앞을 보면서도 "나는 행복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미래의 행복은 지금 그대가 얼마나 행복한지에 달려 있다. 지금 바로 행복하기를 시작하라.

▷행복을 선택하라= 우리는 늘 만족과 불만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때 명심할 것은 하나를 선택할 때 하나는 더 작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행복과 불행 중 늘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행복의 느낌이 커질 때 불행을 느낄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가나 명상 등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행복을 느끼는 기술을 익히고, 행과 불행 중 늘 행복을 선택하며, 행복하다고 믿고 느끼며 살아가라'. 이것이 핵심이다.

▷자신을 바꿔라= 외부의 상황들은 늘 중립적이다. 그것을 슬프거나 행복해 보이게 만드는 것은 상황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다. 그러니 그대 자신을 바꿔라. 외부환경에 대한 그대의 반응을 관찰하고 가슴의 반응인 파도들을 중립화하라. 다이아몬드는 아무리 많은 파도가 산산이 내리쳐도 그 힘과 투명함을 유지한다. 이와 같이 내면의 평온함에 의해 의식이 결정화된 이는 강한 시련의 폭풍우를 당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내면의 참된 자아의 중심에 늘 고요히 자리잡고 있으라.

▷소유와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라= 물질주의적인 사람들은 미친 듯이 행복의 나비를 좇아가지만 결코 그것을 잡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이 열망하는 모든 것을 갖는다 해도 행복은 여전히 그들을 비껴갈 것이다. 돈과 소유로부터 행복을 추구하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영원한 갈망의 노예 신세가 된다. 절제된 삶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소박한 생활과 고상한 생각의 습관을 들이고, 더 많이 번다 해도 적게 쓰는 자세를 가져라. 나아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더 많이 벌려는 노력을 하라.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나누어라.

▷우리 영혼의 본성은 지복(至福)이다= 당신은 영원한 기쁨을 부여받은 불멸의 존재다. 죽지 않을 수 없는 몸으로 사는 동안 이 진실을 결코 잊지 말라. 이 세계는 신성한 무대감독의 연출로 자기 몫의 배역을 연기하는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의 진정한 본성이 영원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당신 몫의 역할을,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충실히 연기하라.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당신 영혼의 기쁨이다. 그러니 슬픔, 쾌락, 무관심, 그리고 물질적인 삶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로 뛰어들기 전에 변치 않는 지복의 고요한 바다에서 수영하는 법을 배우라.

▷행복의 기술을 익히라= 행복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련하고 또 단련해야 한다. 밤마다 자리에 들기 전 십분 동안, 가능하면 더 오래, 고요히 침묵에 잠기라. 아침에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그렇게 하라. 날마다 펼쳐지는 삶의 전쟁터에서 이런저런 힘든 일을 넉넉히 맞이할 수 있게 해줄 꺾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행복의 습관이 몸에 밸 것이다. 이제 그 내면의 버릇처럼 된 행복으로 날마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라.

▷변화를 불변하는 삶의 정수(定數)로 받아들여라= 인생이란 얻음과 잃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의 끝없는 연속이다. 한순간 시련의 폭풍이 위협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 한줄기 빛이 어두운 하늘을 밝힌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컴컴해진다. 삶은 곧 변화다. 그 안에서 고요하라. 평온하라. 일할 때도 조용히 움직이라. 언제고 더 이상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을 보게 되리라. 안으로부터 힘이 솟아날 것이고, 어떤 외부 자극에도 휘청거리지 않게 될 것이다.

하대성 퇴역 중령은 현재 경북대 평화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현주 기자
하대성 퇴역 중령은 현재 경북대 평화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현주 기자

〈하대성 퇴역 중령〉

하대성(59) 퇴역 중령은 육군 항공 헬기조종사 출신이다. 53세에 퇴역했고 2년 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군에서 다뤄온 안보·위기관리 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하대성 퇴역 중령은 군인 아버지를 둔 탓에 여섯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닌 두 아들에게 미안한 게 많다고 했다. 이현주 기자
하대성 퇴역 중령은 군인 아버지를 둔 탓에 여섯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닌 두 아들에게 미안한 게 많다고 했다. 이현주 기자

-어떤 삶을 살아왔나.

▶대구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다 대학시절 우연히 눈에 들어온 군 장학생 ROTC 모집 공고가 내 삶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운 좋게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돼 학업을 마쳤고, 1988년 임관돼 전방으로 발령받았다. 그때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평생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잘 갔다 오라"고 했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그 눈물은 군 생활 내내 '어떻게든 잘 살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남았다. 이는 조국과 가족, 친구를 위해 언제든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각오이자, 맡겨진 임무를 끝까지 완수해내는 집요함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개인적인 쓰라림이기도 했다. 군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느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도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입학식과 졸업식, 부모님과의 여행 같은 소중한 삶의 궤적들은 모두 놓치고 살았다. 자식으로도, 남편으로도, 아버지로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을 평생 가슴에 안고 있다. 그래서 가수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들을 때면 유독 가슴이 저려온다.

2019년에는 31년 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퇴역했다. 평소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혁신하는 최고의 방책은 군인의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교육에 있다'는 지론이 있었기에 퇴역 전 경북대 대학원에 입학했고 2021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 대학 평화문제연구소에 들어가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2011년 서울 ADEX(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 참석해 항공기 및 장비 견학을 하고 있는 하대성(왼쪽) 퇴역 중령. 본인 제공
2011년 서울 ADEX(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 참석해 항공기 및 장비 견학을 하고 있는 하대성(왼쪽) 퇴역 중령. 본인 제공

-살아보니 어떤 게 행복인 것 같나.

▶인내의 끝이 언제나 달콤한 행복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까다로운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든 그 관계를 풀어보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음에도 결국 마음처럼 되지 않아 깊은 절망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결국 '견디는 삶',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그 힘든 시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언제나 가족에게서 나왔다. 두 아들이 춘천, 대전, 논산, 포천, 대구까지 총 여섯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도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잘 자라주었고, 시부모님을 모시며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전방 부대 근무 시절 늦은 퇴근길에 문을 닫으려는 동네 닭집에 겨우 당도해 사 들고가던 통닭 한 봉지, 그것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뛰어 나오던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무것도 없는 낯선 시골 땅에 오직 나 하나만 바라보고 따라와 준 가족들, 그 존재야말로 제 삶을 지켜준 진짜 힘이자 행복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성취와 인정이 행복의 필수조건이라 믿었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평온하게 맞는 하루가 행복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얼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이 책임감으로 꽉 찬 '해야만 하는 삶'이었다면, 앞으로는 주위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따뜻한 생각을 나누는 삶을 조금 더 살고 싶다. 건강을 잘 보살피고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동안 군과 학계에서 쌓아온 경험들을 차분히 정리해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

육군3사관학교 교수 및 도서관장 재직 시절인 2015년, 육군3사관학교 도서관은 전국도서관 평가에서 병영도서관 최고 포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오른쪽이 하대성 퇴역 중령. 본인 제공
육군3사관학교 교수 및 도서관장 재직 시절인 2015년, 육군3사관학교 도서관은 전국도서관 평가에서 병영도서관 최고 포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오른쪽이 하대성 퇴역 중령. 본인 제공

-자녀와 인생 후배들에게 행복과 관련해 조언해달라.

▶인생을 조금 더 '멀리' 보고 살아가라는 조언을 건네고 싶다. 대개의 사람은 당장 몇 년 안에 이루고 싶은 단기적인 목표에 몰두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어그러지면 인생이 무너진 듯 쉽게 흔들리곤 한다. 그러나 30년 뒤의 긴 호흡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간다면 눈앞의 작은 실패나 시련에 인생 전체가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그 여정이 당장은 넉넉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남들과 비교해가며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견딤의 시간'이 사람을 내면부터 키우고, 삶을 깊고 단단하게 만들며, 결국 진짜 행복에 이르게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눈앞의 화려한 성과에 조급해하기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나만의 삶의 속도'를 먼저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도, 사랑도 결국 멀리 보고 나아가는 이들의 몫이다.

또 하나,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사람'과 '인연'만큼 소중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을 만나고, 군인이 되고, 가정을 이루고, 진급을 거쳐 박사가 돼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이 모든 것은 참 좋은 인연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그러니 우선 나부터 만나는 인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젊은 세대의 행복 증진을 위해 '서로를 존중하는 자유'가 상식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군에서 체득한 질서의 가치,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느껴온 자유의 소중함을 함께 기억하며 이 두 가지 가치가 우리 사회 안에서 조금 더 세련되게 조화되는 패러다임이 형성되길 기대한다.

왼쪽은 2012년 3군사령부 참모장교 시절, 오른쪽은 2008년 육군본부 참모장교 시절. 본인 제공
왼쪽은 2012년 3군사령부 참모장교 시절, 오른쪽은 2008년 육군본부 참모장교 시절. 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