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직후 가격 줄인상 정황…검찰 "소비자 부담 떠넘겨"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휘발유 가격이 급등했던 당시, 정유업계 내부에서는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듯"이라는 대화가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국내 정유4사가 장기간 담합과 전량구매계약 구조를 통해 경쟁 없이 유가를 끌어올렸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4일 국내 4대 정유사 가운데 한 곳의 가격결정부서 단체 대화방에서는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라는 메시지가 오갔다. 이들은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듯"이라고도 언급했다.
당시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리터(ℓ)당 1천800원을 돌파한 상황이었다. 추가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일부 주유소에는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검찰은 최근 수사를 통해 유가 급등 과정에서 정유업계의 담합 정황과 왜곡된 유통 구조가 작동했다고 판단했다.
통상 시장 경쟁 체제에서는 정유사들이 주유소 확보를 위해 공급 가격 경쟁에 나서고, 그 결과 소비자 가격에도 일정 부분 인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자영주유소들과 이른바 '전량구매' 방식 계약을 체결해 왔다.
이 계약은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 제품만 공급받도록 묶는 구조로, 정유사가 정한 입금가에 따라 제품을 우선 공급받고 이후 월말에 정유사가 별도로 산정한 확정가로 최종 정산하는 방식이다.
주유소 업주 입장에서는 타사 제품을 더 저렴하게 들여올 선택권이 제한되고, 판매 마진 역시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량구매계약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관련 시정명령을 내렸고, 2013년 대법원 역시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형태의 전량구매계약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현재 정유 4사의 전량구매계약 체결 비율은 평균 98%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주유소협회 조사에서는 자영주유소의 83.3%가 "실질적으로 계약 선택권이 없었다"는 취지로 응답했다. 일부 업주들은 "정유사가 왕 같은 구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계약을 위반한 주유소에 각종 불이익도 가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보너스카드 운영 중단, 거래 혜택 축소는 물론 매출액의 10∼30% 수준에 이르는 위약금 청구 소송까지 제기된 사례도 있었다는 것이다.
정유사 관계자들은 내부 이메일과 메신저에서 전량구매계약과 관련해 "고이 보내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악성 거래처는 소송을 통해 골탕을 먹여야 할 것 같다", "전량 계약이라 (다른 곳으로) 가는 순간 손해배상 아작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정유사들이 사실상 경쟁 없이 가격을 조정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석유제품 자체의 품질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도 수사 과정에서 강조됐다.
정유사들은 저장 탱크 물량을 서로 교환하는 '스와프(SWAP)' 거래를 지속해왔는데, 이는 제품 간 실질적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을 업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결국 시장에서 남는 핵심 경쟁 요소는 가격이지만, 담합과 공급 구조 문제로 가격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전쟁 국면에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 정보를 공유한 뒤 공급 가격을 인상했고, 이후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당시 정유사들이 상당량의 원유 재고를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단기간에 공급 가격을 급격히 올릴 합리적 이유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또 2024년 7월부터 이미 담합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확인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간 직접 담합 규모는 약 14조2천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정유4사가 함께 가격을 올리며 발생한 시장 전체 영향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26조원 규모의 담합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검찰은 추산했다.
결국 공급 가격 상승 압박을 받은 자영주유소들은 소비자 판매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최종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