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근대사] 한국인들이 '항미원조'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

입력 2026-06-29 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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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이 주장하는 '항미원조'
침략자가 설계한 사상적 프레임의 덫

전쟁기념관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만든 문제의 포스터. 6·25를 중국 측이 주장하는
전쟁기념관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만든 문제의 포스터. 6·25를 중국 측이 주장하는 '항미원조'로 표기하여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하필이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안보 교육의 심장부인 전쟁기념관이 크게 사고를 쳤다. 대한민국 존망의 극한으로 치달았던 '6·25 전쟁'을 공산 침략 세력의 선전 용어인 '항미원조(抗美援朝)'와 동격으로 배치하고, 교사 대상 해외 연수 일정에 단둥(丹東)의 '항미원조기념관' 방문을 포함한 것이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로 해당 일정은 취소되었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국방부의 해명이 더 충격적이었다. "6·25 전쟁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다각적 시각을 소개해 교육적 효과를 높이려 했다"라는, 거의 이적행위에 가까운 망언을 내놓은 것이다.

용어(Terminology)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상과 가치관을 규정하는 프레임이다. 중국공산당이 주장하는 '항미원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공산당의 정치·군사적 계산하에 조작되고 정제된 선전 선동의 결과물이다. 이런 용어를 대한민국의 국방부 산하기관이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침략자가 설계한 사상적 프레임의 덫에 스스로 걸려버리는 파멸적 결과를 맞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항미원조를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이웃 국가를 구하고, 중국의 안보를 지켜낸 정의로운 자위적 전쟁"이자 세계 최강 미군을 박살낸 위대한 승리의 전쟁이라고 정의한다. 사설 단체가 아닌,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진 국방부와 그 산하기관이 이런 용어를 사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반국가 행위'를 정당화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중국 단둥에 위치한 항미원조기념관. 이 기념관은 27년간 문을 닫았다가 재개관했다.
중국 단둥에 위치한 항미원조기념관. 이 기념관은 27년간 문을 닫았다가 재개관했다.

◆'항미원조'라는 사기극

첫째, 6·25는 김일성과 박헌영의 기획,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전 공모하에 진행된 불법 남침이었다. 이런 사실이 구소련 비밀문서(소위 옐친 문서) 등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그런데 중국 측이 주장하는 '항미원조' 용어 속에는 "미국이 먼저 침략했고(원인), 중국은 이에 대응해 자위권을 발동하여 참전했다(결과)"라는 도착된 논리가 잠복해 있다. 이런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침략의 책임을 대한민국과 우방국에 전가하는 적국의 궤변을 공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둘째, 당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파병된 군대는 미국 단독 군대가 아니었다. 남침 직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제82·83호를 통해 북한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고 회원국들의 원조를 공식 촉구했다. 안보리 결의에 따라 국제사회는 16개국의 전투 병력과 5개국의 의료 지원단을 파견하여 유엔 최초의 집단 안보체제를 가동했다.

불법 개입한 중공군은 단순히 미군이나 한국군과 싸운 것이 아니다. 저들은 국제사회의 평화 유지 기능과 유엔을 향해 총칼을 겨눈 명백한 침략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1951년 유엔 총회는 결의안 제498호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침략자(Aggressor)'로 공식 규정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항미원조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유엔 결의에 의한 적법하고 정의로운 집단안보 활동을 '미 제국주의의 불법 침략'으로 선동하는 중공의 주장에 동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셋째, 누가 뭐래도 6·25의 최대 피해자이자 주체는 침략으로 인해 국토가 초토화되고, 수백만 국민이 피를 흘린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항미원조'는 6·25를 '미국과 중공의 패권 다툼'이라는 프레임에 가둔다. 우리의 역사적 주체성을 거부하고 강대국 대리전의 종속물로 전락시키는 용어를 국가 기관이 수용하는 순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은 패권 경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주목할 점은 중국 스스로도 이 용어를 '정치적 도구'로 취급해 왔다는 사실이다. 중공이 신의주 건너편 단둥에 '항미원조기념관'을 개관한 시기는 1958년이다. 느닷없이 중국은 이 기념관을 1966년부터 1993년까지 무려 27년간 폐쇄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첫째, 중국 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숙청과의 연동이다. 세계 최강 미군과 싸워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 펑더화이다. 그랬던 그가 1959년 루산(慮山) 회의에서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마오쩌둥은 그를 잔인하게 숙청했고, 이와 함께 펑더화이의 치적이나 다름없는 항미원조전쟁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둘째, 마오쩌둥은 1971년 소련과 맞서기 위해 미국과 손잡고 '연미항소(聯美抗蘇)' 전략을 채택했다.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미국의 힘이 필요해지자 미군을 침략자로 규정한 '항미원조' 용어가 걸림돌로 떠올랐다. 6·25 20주년인 1970년부터 중공 당국은 인민일보 지면에서 '항미원조' 용어를 지워버렸고, 1975년 개정된 중국 수정헌법에선 '항미원조' 용어를 삭제했다. 그런 실종 상태는 40여 년 지속되었다.

이 용어가 불사조처럼 살아난 시기는 6·25 60주년 되는 2010년이었다. 이 해에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GDP 세계 2위(G2)에 올랐다. 아편전쟁 이후 170년 만에 아시아의 경제 패권을 탈환한 것이다. 게다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로 미국이 휘청거리자 중국은 미국과 공존에서 대립구도로 전환했다. 차기 지도자로 낙점된 시진핑 부주석은 2010년 10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60주년 좌담회'에서 충격적인 연설을 했다.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 그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다. 조선 내전이 터진 후 미국의 트루먼 정부는 제멋대로 무장간섭에 나서 전면전을 일으켰고, 중국의 여러 차례 경고에도 38선을 넘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육박해 우리 영토에 전화를 미치게 했다."

시진핑의 논리에 따르면, 6·25는 단순한 '내전'이었는데 미국이 침략했기 때문에 중국이 자위적 차원에서 참전했다는 것이다. 전쟁의 주범인 북한의 남침 사실이 교묘하게 은폐된 거짓 수사(修辭)의 극치다. 이 연설을 기점으로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고수해 온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노선을 폐기하고 중화민족주의로 이행했다. 그리고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을 대대적으로 성역화하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패권 전쟁을 선언한 중국이 역사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은 부주석 시절인 2010년 10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진핑은 부주석 시절인 2010년 10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60주년 좌담회'에서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6·25가 중공군의 위대한 승리였다고?

중국은 항미원조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블록버스터 영화 '장진호'(2021)를 제작했다. 중국은 장진호 전투를 "미군을 완벽히 포위 섬멸한 위대한 대승리"라고 주장한다.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이 유엔군의 북진을 저지하고 후퇴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 전투는 중공군의 궤멸적 패배였다.

중국이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제작한 영화
중국이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제작한 영화 '장진호' 포스터. 중국 측은 장진호 전투를 "위대한 승리"로 주장하지만 중공군 12만 명 중 4만 명이 죽은 궤멸적 패배였다.

당시 마오쩌둥은 중공군 제9병단 사령관 쑹스룬(宋時輪)에게 "미 해병 1사단을 단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완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쑹스룬은 12만 대병력으로 미 해병 1사단 중심의 유엔군 3만 명을 장진호 계곡에서 겹겹이 포위했다. 4대 1이라는 압도적인 병력 우세였다. 문제는 개마고원의 혹독한 강추위였다. 방한장구도 갖추지 못하고 장진호 전투에 투입된 중공군 9병단은 20일간의 전투에서 12만 병력 중 4만 명이 죽었다. 그중 동사자·아사자가 2만 8,954명으로 집계되었고, 그와 비슷한 수가 부상·동상을 입었다.

장진호에서 중공군 3개 연대 병력이 총을 쥔 자세로 얼어 죽었다. 3개 연대 병력 중 생존자는 2명뿐이었다. 이로 인해 빙조련(氷雕連), 즉 '얼음조각 연대'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9병단은 이후 몇 달 동안 활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것이 중국이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만들어 전 세계에 떠벌인 장진호 전투의 실상이다.

중국은 6·25 관련 사상자 수를 국가기밀로 은폐했다. 2014년에야 전몰자 수를 19만7천653명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공군 전사자는 40만 명, 부상자는 48만 명에 달한다. 미군 사망자는 3만 6천여 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2021년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라는 제3차 역사결의를 채택했다. 중국이 외치는 승리는 젊은 청춘들의 목숨을 갈아 넣은 처절한 '정신 승리'였다.

최근 들어 중국은 무력을 앞세운 물리적 전쟁을 벌이기 전에 아군의 인식을 마비시키고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을 고도로 구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적으로는 통용될 수 없는 적국의 프로파간다 용어인 '항미원조'가 안보 교육 프로그램에 스며든 이번 사건은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이 한국의 국방부 산하기관까지 파고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다.

여론의 거센 비난으로 교육 프로그램은 취소되었지만, 대중은 이미 그 용어에 반복 노출되었다. 논란을 일으켜 특정 용어의 인지도를 높이고 대한민국 내부의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려는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소란이 반복될수록 일반 대중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잃어버리고, 피아 경계가 모호해지는 '가치 판단 불감증' 상태에 빠지게 된다.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국방부와 그 산하기관이 해야 할 일은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기리고 투철한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다. 좌파 정부의 국방부와 그 산하기관은 국민 세금을 투입하여 국가의 정당성에 총질을 해대는 반(反)헌법적 행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중공의 회색지대화 전략을 무력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란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소란을 압도하는 '역사적 사실을 통한 응징'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 실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저들이 위대한 승리로 떠벌이는 6·25 전투의 참혹했던 실상을 폭로해야 한다. 역사 왜곡에 맞서는 최강의 무기는 '역사적 사실'이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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