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배종찬] 국민 더 갈라치게 만든 배재고·리센느 논란

입력 2026-07-08 10: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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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일련의 사태들은 한국 사회의 이념적 대립과 진영 논리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 구호' 논란,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의 사투리 한마디에서 비롯된 '일베 말투' 사상 검증 논란, 그리고 SBS 드라마 '김부장'의 원작을 둘러싼 일베 의혹까지, 일상의 언어와 문화적 표현들은 순식간에 정치적 심판대에 올랐다.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 분석(썸트렌드, 2026년 7월 5~7일) 결과는 이 현상을 목격하는 대중의 적나라한 심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배재고와 관련해서는 '논란', '비판', '피해', '갈등'과 함께 대회 출전 금지 조치에 따른 '중징계',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혐오'와 '우려'가 중심을 이루었다. 반면 한편에서는 과도한 낙인에 대항하는 '응원'과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진심'이라는 상반된 감성이 격돌했다. 리센느의 경우 역시 '논란', '의혹', '오해'가 거대한 줄기를 형성한 가운데, 사투리를 기계적 혐오 표현으로 단정짓는 것에 대한 '반발'과 '역풍', 그리고 무분별한 이념 검증 속에서 피어난 '비판'과 '혐오'의 감성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 속 키워드 단어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상호 신뢰를 잃고 극단적인 감정적 대치 상태에 놓여 있음을 증명한다.

5·18 민주화운동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역사적 인물이나 비극적 사건과 관련된 이슈가 일상에서 이토록 지나치게 부각되고 정치적으로 집단화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문화와 스포츠, 청소년들의 철없는 행동이나 지역 사투리라는 생활 영역에까지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며 집단적인 '사상 검증'을 벌이는 것은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이분법적 구조로 양분화한다.

이러한 현상이 야기하는 사회적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반성과 교육이 들어설 자리를 '영구적인 낙인'이 대체해 버린다. 배재고 야구부원들이 광주제일고를 찾아 눈물로 사과하고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용서를 구했음에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여전히 연대와 포용 대신 혐오의 언어가 번진다. 미성숙한 학생들의 잘못을 교육적으로 바로잡기보다 사회적 매장을 시도하는 거친 흐름은 공동체의 회복 탄력성을 저해한다. 또한 사투리의 자연스러운 억양과 표현인 "무섭노"라는 한마디를 두고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베식 표현이라 단정 짓는 문화는 언어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위축시킨다. 평범한 일상의 언어마저 '일베냐 아니냐'라는 단 하나의 필터로 감별하려 드는 '이념 몰이' 사회에서는 구성원 간의 일상적인 소통마저 검열과 불신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사회적 균열을 봉합해야 할 정치권이 도리어 갈등을 부추기고 '이념몰이'의 전면에 나선다는 점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대중의 감정적 화력을 빌려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거나 진영을 결집하기 위해 역사적 이슈와 혐오의 밈(Meme)을 적극적으로 정쟁화한다. 사투리 용법을 두고 '죽창가'를 부르듯 사상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대중문화 콘텐츠의 사소한 장면을 억지로 엮어 이념 전장으로 끌고 들어오는 구태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다.

정치권이 역사적 이슈를 이념몰이의 도구로 삼는 구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인들 스스로가 '언어의 정치적 무기화'를 중단해야 한다. 역사적 비극이나 전직 대통령의 가치는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며,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방패나 창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언론과 시민사회 역시 무분별한 '일베 감별법'이나 '마녀사냥식 낙인찍기'에 동조하지 않는 성숙함을 갖추어야 한다. 빅데이터 분석에서 나타난 '우려'와 '오해', '반발'이라는 단어는 대중 또한 이러한 과도한 이념 전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방증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엄정한 교육과 합리적인 비판을 하되, 그것이 일상의 억압과 혐오의 악순환으로 번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이념의 색안경을 벗고 일상의 언어를 일상의 영역으로 돌려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