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국장석 부장
영국의 저명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이라고 칭한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1899~1992)는 정부 주도의 관치경제를 가장 경계했다.
그의 저서 '노예의 길(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은 선한 의도로 시작한 국가의 계획이 더 나쁜 해악(害惡)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지전능한 정부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자유'와 '시장'의 존재 이유를 제시한다.
안타까운 현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때 아닌 관치경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발단은 '호남 반도체 투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공석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천문학적 규모의 반도체 전공정(팹) 라인을 구축하는 투자를 기정사실화했다.
삼성전자 IM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즉각 우려를 나타냈다.
고 의원은 "반도체 투자 입지는 엄연히 기업의 경영 판단 영역인데 정부 정책실장이 정부의 치적인 것처럼 공식석상에서 투자 지역을 말하고, 합의된 것처럼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직권남용이고 강요이자 시장 질서 침해로, 전형적인 관치경제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거세지는 논란에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27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국가정책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기업들 팔목 비틀어 강요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일은 정부의 용수·전력·용지·인프라·인력양성·정주여건 구축 등 기업환경 조성과 공직자들의 설득·요청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들이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해 결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관치경제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반도체 초과세수'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이 논란의 첫 출발 역시 김용범 실장의 발언이었다. 김 실장은 지난달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인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 전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돼야 한다"며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다.
이어 27일에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기업 초과이익 분배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시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초과이익 분배 자체는 국민 복지라는 선의(善意)에서 출발했을지 몰라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수백만 반도체 대기업 주주들에겐 시장경제의 핵심 동력인 '인센티브(보상) 구조'를 파괴하는 '사유재산권 침해'로 비춰졌다.
"기업의 이익을 강제로 환수해 국민에게 직접 나누어주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달콤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과 국가 경제 모두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각계각층으로 번졌다.
호남 반도체 투자 역시 이 같은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호남은 안 된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천문학적 투자에도 왜 호남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는 말이다. 인력·전력·물 등 전문가들의 인프라 부족 지적에 대해 여권은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정쟁 소재로 삼고 있다"는 동문서답(東問西答)만 거듭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이 선의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선의의 개입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하이에크의 말처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돼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그 갈림길 위에 서 있는 지도 모른다.






